눈부신 비경과 유서 깊은 역사, 연천군

눈부신 비경과 유서 깊은 역사, 연천군

 

 

경기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연천군은 동쪽은 연천읍과 청산면이 포천시와 접하고 있으며, 서쪽은 장남면이 파주시와 인접해 있다. 북쪽은 신서면이 황해도의 금천로 및 강원도 철원군과 인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전곡읍 간파리가 동두천시와 경계를 이룬다. 경원선 철도와 3번 국도가 추가령 지구대인 연천군 중심부를 관통해 교통이 편리하다.

 

 

 

|연천군의 탄생 연혁|

연천의 탄생은 30만 년 전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은 기원전 18년에 온조왕의 백제 건국 이후 백제 영역에 속하게 된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6년(396)의 남진정책으로 고구려 영역에 속하면서 ‘공목달현’으로 불렸는데 이것이 최초의 역사상 기록이다.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그가 한강 유역을 점령한 후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공성현’으로, 고려 태조 23년(94)에는 ‘장주(獐州)’로 명칭이 변경되고, 고려 현종9년(1018)에는 동주군(東州郡: 현 철원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고려 문종 23년(1069)에 승령(僧嶺)·삭령(朔嶺)·마전(麻田)·적성(積城)현 등을 편입하면서, 연천군이 개성부에 편입돼 경기에 속하게 되었다. 고려 충선왕 원년(1310)에 장주를 ‘연천(漣川)’ 또는 ‘연주(漣 州)’로 개칭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천년, 그 이상의 역사가 숨 쉬는 곳|

연천 전곡리 유적 사적 제268호인 ‘연천 전곡리 유적지’는 1978년 미군 병사 그레그 보웬에 의해 동아시아 최초로 구석기 시대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전곡읍 남쪽 일대의 한탄강이 U자 모양으로 감싸고 도는 대지상(臺地狀)의 지형에 분포한다. 주먹도끼가 전시되어 있는 세계적 규모의 연천 전곡리 ‘선사박물관’은 원시 생명체의 신비로운 곡선을 모티브로 건립되었다.

고구려의 성이었던 호로고루, 은대리성, 당포성이 연천에 있다. 3개의 성은 모두 강에 맞닿은 절벽의 입지를 활용해 흙으로 된 경사면에 돌을 쌓아 올리는 굽다리 방식으로 축조됐다. 세 성 모두 전형적인 고구려 성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연천을 굽이쳐 돌아가는 한탄강은 약 27만 년 전 분출된 용암이 식으면서 생긴 지형으로 곳곳마다 비경을 자랑한다. 아름다운 연천의 자연 7경은 임진강, 동막골유원지, 고대산, 한탄강관광지, 열두개울, 백학저수지, 재인폭포다. 그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연천읍 고문리 가마골 입구에 위치한 ‘재인폭포’는 연천 자연 7경 중 가장 유명한 장소다. 검은 현무암 주상절리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름다워 제주 천지연폭포와 비견되곤 한다. 27m 높이의 스카이 워크 전망대에서 수려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폭포를 조망할 수 있다.

 

 

 

 

 

 

미산면 아미리 임진강변의 아미산 자락 정상부 못 미쳐 조성된 아늑한 평지에 자리하고 있는 ‘숭의전지’. 조선시대에 전조(前朝)인 고려시대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게했던 숭의전이 있던 자리다. 원래 이 터는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인 앙암사가 있었던 곳이다. 태조 6년(1397)에 태조의 위패를 모실 사당을 건립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 숭의전의 시초이다.

연천은 이처럼 수많은 문화재 외에도 6·25전쟁 당시 격전지로 충혼탑(군남면 왕림리), 전투기념비(신서면 대광리), 38선돌파기념비(청산면 초성리), 연천역 급수탑 등이 곳곳에 있다. 전쟁으로 희생된 병사의 명복을 빌거나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