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 선생은 ‘청록파’로 기억에 깊이 남은 인물입니다. 조지훈, 박목월 선생과 함께 교과서에서 배웠던, 학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길 위에 섰습니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는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안성맞춤랜드의 남사당상설공연장을 지나 얼마쯤 더 들어가자 ‘박두진문학관’이라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얼핏 보기에도 직선을 잘 살려서 만든, 현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외관입니다.
원래 박두진문학관은 보개도서관 3층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단독 문학관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지난해 11월 중순경. 북카페와 다목적실 등을 갖춰 이제는 안성을 대표할 법한 복합문화공간이 됐습니다. 이곳은 개관과 동시에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찾아오는 등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박두진 선생은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30년대 말 문단에 등장했습니다. 1939년 6월 <문장> 5호에 정지용 시인의 추천으로 ‘향현’과 ‘묘지송’을 발표했습니다. 선생은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도 역동적인 생명의 원천으로 자연을 주목하며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정지용 시인이 그의 작품을 두고 ‘식물성’이라든가 ‘신자연’이라는 표현으로 평가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광복 이후 발표한 ‘해’는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빛의 속성을 지닌 해를 통해 극복하려는 시적 의지를 보여주며 대표작으로 남았습니다. 물론 그의 작품은 한 편 한 편 쉽게 넘길 것이 없습니다. 평생에 걸쳐 그가 남긴 결과물은 20여 권의 시집과 1,000여 편의 시, 400편의 수필이 넘습니다.
박두진문학관은 그런 그의 작품세계를 시대별로 정리하고 1부 박두진의 시를 읽다, 2부 박두진의 일상을 보다, 3부 박두진의 예술세계와 만나다 등으로 나누어서 소개합니다. 여기에는 총 750여 점의 자료가 전시됐습니다.
문학관 내부는 전반적으로 하얀색과 파란색이 조화를 이룹니다. 그가 평생토록 보여주었던 내면의 세계가 아마도 그 두 가지 색으로 대변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문학이외에도 단소, 병풍, 도자기, 수석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색채를 지닌 예술을 꿈꾸었다고 합니다. 일상이 곧 예술로 채워져 있었고, 이는 다시 그의 작품세계를 구성하는 주요한 토양이 된 것이죠.
1층에서 위로 올라가며 전시관을 도는 동안 박두진이라는 세계로 들어가 온전히 그의 모든 것을 찬찬히 살피고 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옥상전망대로 향합니다. 탁 트인 전망에 가슴이 시원해집니다. 전망대 한편에는 그의 시 ‘인간밀림’을 조형으로 구성한 작품이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이토록 간결하고 명쾌하게 보여준다는 게 무척 인상적입니다.
문득 이곳을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라는 게 무릇 그러하듯, 이곳도 다시 살피다 보면 박두진 선생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선생은 떠나셨지만, 우리는 언제든 그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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