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전후 정부의 주도로 개발된 도시 과천. 이 도시 청년들의 추억은 대부분 아파트에서 시작한다. 이른바 아파트 키즈. 논밭 사이를 뛰노는 대신 단지와 단지를 넘나들었다. 청소년기에는 컴퓨
터 오락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온라인에서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과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과천 청년들’은 말하자면 ‘요즘 것’들이다. 이들이 도시를 위해 일하는 방식은 어딘가 다르다. 한계를 정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되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느슨하지만 끈끈하고, 느리지만 꾸준한 도전을 계속하는 ‘과천 청년들’은 도시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과천의 한 카페에서 ‘과천 청년들’의 이동혁 대표와 구성원인 송준규·이한진·허선 씨를 만났다. ‘과천 청년들’은 일반 단체와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서로 얽매지 않고 느슨하게 단체가 운영된다. 이날도 4명 중 3명이 지각했지만, 질책을 하거나 눈치를 주는 구성원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고 커피를 시킨다.
“우리는 느슨한 관계를 지향해요. 여기 모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구성원이에요. 2014년 SNS에 ‘과천, 청년들의 수다’라는 페이지를 개설한 이후 구성원이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죠. 그중 가장 오래 활동하고 있는 4명이 주축이 됐어요. 과천 청년들은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누구도 강요하지 않죠. 부담 없이 모여서 수다 떨듯이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공동체예요.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면 뭔가를 하고 있더라고요.”
‘과천 청년들’의 프로젝트 대부분은 수다로 시작한다. 가벼운 대화로 출발해 점점 각자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그중 실현 가능성이 보이는 아이디어를 선택해 실행한다. 요즘 이들의 프로젝트는 재개발로 변해 가는 과천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는 일이다.
‘과천 청년들’은 과천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 공통의 추억을 SNS에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공동체다.
“제일 처음 모이게 된 이유는 과천의 청년을 위한 정책을 고민하고 제안하기 위해서였어요. 목적이 거창해 보이지만, 그렇게 무거운 공동체를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영화 보는 모임 ‘아무나(아웃도어 무비 나잇)’를 만들었죠. 영화를 보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공동체가 꾸려졌어요. 대단한 프로젝트를 하나 하자라고 하면 부담스럽잖아요. 일단 같이 모여서 수다나 떨자며 시작한 거죠.”
‘과천 청년들’의 프로젝트 대부분은 수다로 시작한다. 가벼운 대화로 출발해 점점 각자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그중 실현 가능성이 보이는 아이디어를 선택해 실행한다. 요즘 이들의 프로젝트는 재개발로 변해 가는 과천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는 일이다.
“과천은 다른 지자체와 다르게 주공아파트가 많아요. 정부 주도하에 계획된 도시잖아요. 지금 과천의 청년들 대부분은 주공아파트가 고향인 사람들이에요. 최근 재개발이 계속되면서 오래된 아파트들이 사라지기 시작해요. 그래서 뭐라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죠. ”
구성원 가운데 한진 씨는 지난 2016년 라는 독립 출판물을 집필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과천 주공아파트 단지마다 기록과 추억을 아카이빙하는 것. 한진 씨의 개인 관심사에서 출발해 지금은 ‘과천 청년들’의 공통 프로젝트가 됐다.
“과천에는 참 창의적이고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청년이 많아요. 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각자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애정과 애착도 가지고 있죠. 주공아파트 아카이빙 프로젝트도 여기 모인 우리뿐만 아니라 과천의 다른 단체에서 활동 중인 청년도 참여해 하고 있어요.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지지하고 함께 만들어 가 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하는 일은 과천에 사는 청년 개인이 가진 관심사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도와주는 거죠.”
‘과천 청년들’과 대화하다 보면 가장 자주 등장한 세 개의 키워드가 있다. ‘드러내라, 나오라, 연결하라.’ 꼭 멋진 아이디어가 있어야 나오는 공동체가 아니다. 함께 수다 떨고, 마시고, 놀다 보면 무언가를 하는 열린 모임이다.
“얼마 전 청년 고독사에 관한 뉴스를 봤어요. 온라인 시대가 되면서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될 수 있지만, 오히려 소외된 사람은 더 외로워지는 시대 같아요. 우리는 단지 과천의 청년들이 외로울 때 나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편한 공동체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고립되지 않고 마음껏 대화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말이죠.”
이들에게 느슨한 모임이라는 단어는 책임감을 덜어내려는 요령이 아니다. ‘과천 청년들’의 느슨함은 청년 네트워크 확장을 위한 전략에 가깝다.
“우리는 과천이라는 무대에서 살아가는 청년이에요. 그러니 이 무대를 바꾸고 꾸미는 것도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계속 느슨한 공동체를 이어갈 거예요. 물론 느슨하면 일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어요. 대신 더 많은 청년과 함께할 수 있죠.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도 함께 겪어 줄 수 있는 마음, 그러니까 기다림 같은 게 아닐까요.”
어쩌면 ‘요즘 것’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인지 모른다. ‘과천 청년들’은 성공이나 실패와 상관없이 과천에 사는 청년들이 가진 아이디어와 생각을 지지하고 있다. ‘과천의 청년들’은 여전히 느슨하다. 누구나 편하게 함께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