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방식으로 북을 만드는 사람을 ‘북메우기’라 부른다. 나무로 만든 통에 가죽을 씌우는 사람이란 뜻이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0호 악기장(북메우기) 보유자 임선빈 선생은 올해로 63년째 북을 메우고 있다. 그는 나무통 안에서 공명하는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여 최고의 울림을 내는 북을 만든다.
임선빈 선생이 북 공방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11살이 되던 해부터였다. 공방의 작은 방에서 지내며 심부름을 담당했다. 6개월을 허드렛일만 하던 그는 어느 겨울밤, 인생을 바꾼 북소리를 마주하게 된다. “잠을 자려고 작은 방에 자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만들어 놓은 북을 옮기려다 우연히 북을 한 번 툭 쳐 봤습니다. 그런데 그 울림이 꼭 부모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 같이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몇 번 더 쳐봤죠. 그러자 가슴이 떨리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겨울밤 마음을 울렸던 북소리는 임선빈 선생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날 이후 임선빈 선생은 본격적으로 북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간밤에 북 치는 소리를 스승님이 들으셨어요. 이튿날부터 북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스승님은 제자가 자신만의 북소리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셨던 겁니다. 여전히 그날 밤 들었던 북소리는 작업의 이정표입니다. 그 순간의 울림을 기억해 두었다가 북을 만들 때 떠올리며 소리를 잡아냅니다.”
임선빈 선생은 북을 만들 재료가 중요하다고 했다. 토종 황소 가죽과 오동나무, 소나무가 주재료로 사용된다. 물론 재료가 좋다고 무조건 좋은 북이 나오는 건 아니다. 만드는 이의 정성과 기술이 더해져야 비로소 최고의 북이 완성된다. “어떤 종류의 북을 만드는가에 따라 소가죽의 부위와 나무 종류를 다르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무속인의 북에는 가볍고 맑은 소리를 내는 오동나무에 소 뱃가죽을 씌워 만듭니다. 소리꾼의 소리를 잡아 줘야 하는 판소리 북에는 두꺼운 목 가죽을 쓰죠. 북을 만드는 동안에는 집에도 못 들어갑니다. 꾸준히 가죽을 관리해야 하죠.”
그가 만든 북을 쳐 본 사람은 말한다. 기술과 재료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고. 임선빈 선생의 북이 특별한 이유는 한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후유증으로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고, 다리를 절었죠. 옛날에는 장애인 차별이 심각했습니다. 제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북 공방에서 쫓겨나기 일쑤였어요. 저는 살면서 겪은 한을 북에 풀었습니다. 차별은 오히려 저에게 동력이 됐습니다. 더 열심히 북 만드는 데 매진하게 된 거죠.”
선빈 선생이 22살이 되던 해, 다른 한쪽 귀마저 청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북 만드는 작업을 하며 생긴 직업병이다. 일상생활에서는 보청기를 끼지 않으면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게 됐다. “북소리를 잡을 때는 보청기를 끼지 않습니다. 소리가 증폭되어 왜곡된 북소리가 들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밤 시간에 북소리를 잡습니다. 고요한 방에 혼자 앉아서 북을 칩니다. 그러면 온몸으로 울림이 느껴지죠. 울림을 따라 소리를 찾아가는 겁니다.”
이정준 감독은 임선빈 선생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다. 지난 10월 21일 개봉한 <울림의 탄생>이다. 영화는 임선빈 선생이 최고의 북을 만들기 위해 오래 아껴 두었던 나무를 꺼내는 데서 시작한다. “이정준 감독이 어느 날 찾아와 제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몇 번을 설득했죠. 영화 촬영에 들어가며 아껴왔던 나무를 창고에서 꺼냈습니다. 이 기회에 최고의 북을 만들어 보고싶었죠. 영화는 대북을 제작하는 과정이 담겼습니다. 그 북은 2018 평창 패럴림픽에 기증했습니다.”
임선빈 선생은 인터뷰를 마치며 아직 못 이룬 꿈이 있다고 했다. “죽기 전에 대북 하나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연말에 울리는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치지 않습니까. 그때 같이 울릴만한 영신의 북을 제작하는 게 마지막 소망입니다.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만족할만한 북소리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