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우리 역사 속 호랑이를 만나다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2022년 한반도 역사 속 호랑이 이야기
송하호작도, 종이에 수묵채색, ⓒ 서울옥션

2021년은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지칠 대로 지친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2년 임인년 검은호랑이의 해를 맞는 지금, 용맹하고 강인한 호랑이의 기품은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우리들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온다. 호랑이의 해를 맞아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호흡했던 호랑이의 이야기를 전해 본다.

세상을 놀라게 할 검은 호랑이의 해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으로 ‘검은 호랑이의 해’다. 동양의 MBTI라고 할 수 있는 육십간지 중 39번째 해로 ‘임’이 흑을 뜻해 ‘검은 호랑이의 해’라 풀이된다. 호랑이띠는 ‘범띠’라고도 불리는데 12띠 중 세 번째 띠로 인년생을 가리킨다. 인시(寅時)는 오전 3시부터 오전 5시까지, 방위는 동북동(東北東), 달은 겨울 정월, 계절로는 정월 입춘에 2월 경칩 전날까지가 해당된다. 오행은 목(木), 음양은 양(陽), 대응하는 서양별자리는 물병자리다. 호랑이띠 생은 용감하고 배짱이 있어서 지도자적 자격을 갖춘 경우가 많다고 전해진다. 관대하며 의리도 있고 오직 정열과 정직만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모험과 명예욕이 강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을 해낼 때가 많다고 알려졌다.

담배 먹던 호랑이는 호돌이와 수호랑이 되고

예로부터 호랑이는 한국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대부분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서식한다고 해서 ‘호랑이의 나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 듣던 옛날이야기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로 시작하기 일쑤였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와 같은 익숙한 속담도 있다. 호랑이는 단군신화에도 등장한다. 비록 곰처럼 사람이 되지는 못했으나 최초에 고조선 땅에서 인간이 되고자 했던 동물중 하나가 호랑이였다. 이러한 신화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로 되살아나 곰 ‘반디’와 호랑이 수‘ 호랑’으로 대중들 앞에 서기도 했다. 혹자는 한반도의 모습이 토끼와 같다고 했지만 1908년, 사학자이자 문인이었던 최남선은 <소년>지를 창간하면서 창간호에 호랑이 지도를 그려 넣었다. 발을 들고 대륙을 향해 할퀴며 달려드는 기센 호랑이의 모습인데 이는 엄청난 호응을 얻었고 이후 한반도의 모습은 호랑이로 표현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호랑이를 표현한 마스코트 ‘호돌이’가 당당히 우리나라를 대표했고, 최근에는 이날치 밴드의 수궁가 한 대목 ‘범 내려온다’를 통해 또 한 번 호랑이가 대중의 가까이에 다가섰다.

<소년>지 창간호에 실린 호랑이 지도
반구대 바위그림의 기원에서 민화 속 해학까지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출몰한 것은 3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울주 반구대 바위그림 호랑이의 풍요적 기원, 청동기 시대 호형대구에서 보이는 벽사적 상징성, 와당 도자기 등의 민예품에서 보이는 풋풋한 예술성과 재기 넘치는 익살, 민화와 산신도에 나타난 질박함과 종교적 기원 등은 호랑이에 대한 수많은 민예적 정취를 함축하고 있다.
균형 잡힌 신체구조, 느리게 움직이다가도 목표물을 향할 때의 빠른 몸놀림, 빼어난 지혜와 늠름한 기품의 호랑이는 산군자, 산령, 산신령, 산중영웅으로 불리는 백수의 왕이었다. 재앙을 몰고 오는 포악한 맹수이기도 하지만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영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동화로 남은 구전설화 속에서 호랑이는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예의바른 동물로 대접받기도 하고 골탕을 먹일 수 있는 어리석은 동물로 전락되기도 한다. 이처럼 양면의 모습으로 표현됐던 호랑이를 우리 조상은 좋아하면서도 싫어했고 무서워하면서도 우러러봤다. 특히 민화에서 호랑이가 자주 등장하는데 길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무관의 표시로 관복의 흉배에 호랑이를 수놓았고 민간에서는 호랑이그림을 걸어 두면 관직이 높은 귀한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까치호랑이’처럼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삿된 존재를 멀리하고 기쁨을 가져다주는 벽사적·길상적 의미가 강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친근한 맹수

역사적으로 실제 호랑이가 사람에게 큰 위협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이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심각해지자 인왕산에 사는 호랑이를 쫓아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세조왕 때 창덕궁 뒤뜰까지 호랑이가 들어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떡 하나 줄까” 묻던 민담 속 호랑이는 고개마다 이어지던 수많은 인명 피해의 역사를 반영한다. 결국 20세기에 들어선 이후 일제의 해수구제사업이 벌어지면서 우리나라 호랑이 개체수는 급감했고, 마침내 6·25 전쟁 이후 남한에서 멸종됐다. 최근에는 호랑이를 복원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호랑이가 원활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영역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전히, 호랑이는 친근한 맹수다. 현대의 호랑이는 고양잇과의 거대 동물로, 트렌디한 음악으로, 캐릭터 상품으로 이미지를 바꿔 가며 한국인의 곁을 지키고 있다. 2022년에는 경기도민 모두 호랑이 기운을 품고 열정과 강인함으로 무장해 힘찬 새해를 열어 나가길 바라 본다.

용호도, 종이에 수묵채색, 19세기, 조선, ⓒ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