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면적의 1.4배 규모인 화성시는 동서로 쭉 뻗어 있는 데다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지형을 형성하고 있으며, 서쪽 끝은 해안을 접하고 있다. 그런만큼 다채로운 경관을 품은 화성시는 전해 내려오는 전설 또한 풍부하다. 화성시의 산과 강에 얽힌 전설을 소개한다.
쌍봉산은 화성시 우정읍의 조암반도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산봉우리 두 개가 나란히 솟아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고려 현종 9년(1018) 수원군에 속했을 때는 쌍부산이라고 했는데, 조선 초중엽에는 잣나무가 많이 있어서 백산이라고 불렀는가 하면, 구한말에는 두 산봉우리 가운데가 쑥 들어가 말안장과 같이 생겨 마안산으로도 불렸다고 전해진다.
이 산에는 아주 먼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남쪽 지방 어느 산골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일삼던 마귀가 득실거리는 소굴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살고 있던 마귀할멈 하나가 마귀소굴에서는 마귀들끼리도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어 먹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해 그곳을 뛰쳐나왔다.
마귀할멈은 인심 좋고 먹을 것 많기로 소문난 한양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 마귀할멈은 가는 곳마다 못된 짓만 골라 했다. 부잣집 아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공연히 심술이 나 슬쩍 머리를 쓰다듬는척하곤 병을 주었다. 아이가 인사불성이 되어 자리에 눕자 부모는 무꾸리(무당에게 길흉을 점치는 일)를 하고 음식과 떡과 죽을 차려빌었다. 마귀할멈은 죽만 실컷 얻어먹고 아이는 내버려 둔 채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한양으로 가는 길에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자 하늘에서 마귀할멈에게 인간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지만 마귀할멈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마귀할멈은 인심 좋기로 소문난 조암이라는 곳에 이르자 힘이 들어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는 잠시 쉬려고 쌀자루를 내려놓고 있을 때 하늘은 착한 사람들이 해를 입을까봐 마귀할멈에게 마지막경고를 했다. 더 이상 올라가지 말고 서쪽으로 가면 바닷가 ‘참남기’란 곳에 배가 있을 터이니 섬에 들어가 마음을 고치라는 호령이었다.
“아니 내가 무슨 잘못으로 외로운 섬으로 쫓겨가야 합니까? 한양 길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그곳에 가서 나오지 않겠습니다.” 마귀할멈은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이번에도 하늘의 말을 거역했다.
그러자 하늘에선 호령이 내려졌다.
“거역한다면 할 수 없다. 이젠 끝장을 보자.”
하늘에 삽시간에 먹장구름이 모여들고 비바람이 불면서 뇌성번개와 벼락이 치더니 마귀할멈이 하늘로 끌려 올라가 목숨이 끊어졌다. 이때 마귀할멈이 내려놓은 두 개의 쌀자루는 산으로 변해 쌍봉산이 되었고, 봉우리 사이 골짜기는 마귀할멈이 쌀자루를 짊어졌던 멜빵 자리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이 산에는 힘이 센 장사가 나서 마주 보이는 남산의 장사와 싸움을 했다. 그런데 쌍봉산 장사가 어찌나 기운이 세었는지 돌이란 돌은 전부 남산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현재에도 남산에는 돌이 많
지만, 쌍봉산에 돌이 없는 것은 그런 까닭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옛날 옛적 향남면 수직리에 조마전이라고 하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조마전은 돈을 안 쓸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전혀 돕지 않아 사람들은 그를 구두쇠 영감으로 불렀다. 불쌍한 사람이 곡식을 빌리려고 찾아가면 문전 박대를 하고, 거지는 몽둥이를 휘둘러 쫓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이 목탁을 치며 시주를 청했다. 조마전은 소리를 지르며 쇠똥을 긁어다 스님의 바랑에 넣으며 등을 밀어 집밖으로 쫓아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집에 돌아오다 이 광경을 본 조마전의 며느리는 깜짝 놀라며 뛰어가 스님을 붙잡았다. 며느리는 스님의 바랑을 털고 깨끗이 씻은 다음 쌀을 가지고 나와 수북이 담아주었다. 그리고 시아버지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스님은 “부인의 착한 마음씨에 탄복했습니다. 사흘 후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고 천둥 번개가 칠 것입니다. 영감의 지나친 욕심과 고약한 마음씨를 하늘이 징계하고자 하는 것이니 집안 식구들을 데리고
멀리 피하십시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스님은 그 자리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며느리는 집 안으로 들어가 시아버지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착한 마음을 먹고 베풀며 살자며 호소했지만 시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스님이 말한 날이 되자 맑은 하늘에 구름이 일더니 비바람과 함께 천둥 번개 치며 세상을 뒤흔들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께 피해야 한다며 간곡히 이야기했으나 시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며느리는 할 수 없이 집을 떠나며 눈물을 흘렸다. 조마전이 곳간 문을 열고 재물과 곡식을 보는 순간 그의 집 한복판에 벼락이 떨어졌다. 집과 곳간 할 것 없이 불바다가 되자 조마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신없이 뛰어가던 며느리는 ‘쾅’ 하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웅장하던 기와집이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는 것이 눈에 들어온 순간 천둥 치는 소리가 나더니 며느리와 집안 식구들도 조마전과 같은 운명이 되고 말았다. 며느리는 죽음을 맞은 그 자리에서 불상으로 변했다. 수직리 앞 논둑에는 지금도 불상이 있으며, 액을 물리치고 소원을 비는 아낙들의 고사가 더러 이루어지기도
한다.
칠보산은 애초에 여덟 가지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해 팔보산이라 불렀다. 많은 사람이 팔보산의 보물을 찾기 위해 모여들었고, 헛된 꿈에 들뜬 사람들은 도적으로 변해 활개를 쳤다.
팔보산 인근에 사는 장사꾼 장 씨는 다른 장사꾼들과 함께 산을 넘기로 했지만 약속 시간에 늦어 홀로 산을 넘게 되었다. 산을 무사히 넘은 장 씨가 한숨을 돌리는데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조그마한 샘터에 닭 한 마리가 빠져 허우적거리며 울고 있었다. 장 씨가 닭을 건지자 그 순간 닭이 딱딱해지고 눈이 부시도록 환한 빛을 발했다.
황금 닭이었다. 장 씨는 황금 닭을 보자기에 싸 들고 산을 내려와 근처 주막에 들렀다. 장 씨는 방에서 혹시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싶어 보자기를 풀어 보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 황금 닭이었다. 도적 떼와 한패였던 주모는 장 씨를 훔쳐보다가 마침 돌아오는 도적 떼 두목에게 알렸다. 이를 눈치 챈 장 씨는 줄행랑을 쳤고, 이후 두 번이나 이사를 했다. 어느 날 어찌 알았는지 도적 떼가 들이닥쳤다. 도적은 황금 닭을 내놓으라고 위협했고, 장 씨는 황금 닭을 안은 채 호통을 쳤다.
“천하의 못된 놈들, 네놈들이 이 물건에 손을 댔다간 하늘이 무심치 않으리라.” 장 씨와 아내는 도적이 휘두른 칼에 쓰러졌다. 도적들이 황금 닭을 잡으려 하자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고, 도적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났다.
천둥 번개가 멎자 황금빛을 발하던 닭은 예전 모습으로 변하더니 크게 한 번 울고는 그 자리에서 죽고말았다. 이후 마을에 흉년이 들고 병이 돌았다. 사람들은 팔보산 보물 중 하나가 인간의 욕심으로 부정을 타 없어졌다며 산신에게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그 뒤로는 풍년이 들고 질병도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