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작가의 작업실에는 흰 달이 떠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이 “놓여 있는 것 같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듯 ···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다사로운 김이 오른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 체온을 넣었을까”라며 조선 시대 백자대호(白磁大壺)에 이름 붙인 그것, 이상길 작가가 10여 년 전부터 작업실에 두고 본다는 달항아리다.
체온 담은 살결이 둥글게 차오른 달항아리를 닮아서일까.
스테인리스로 만든 그의 작품 또한 금속이지만 온화하고 단순하면서도 단조롭지 않다.
2022년 제52회 경기도공예품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상길 작가의 ‘마음 담기’는, 무한히 확장하는 선(線)과 점(点)이 그리워하는 우주와의 소통을 그릇이라는 면(面)의 형태로 빚어낸 금속공예 작품이다.
먼저 선(線)은 스테인리스 코일이다.
“코일을 감아 쌓는 기법은 도예의 그것을 닮았지요.
다만 도예는 쌓아 올리는 것만 가능하지만, 이 경우에는 점을 작품 안에 찍을지 밖에 찍을지에 따라 틀에 코일을 감아 올릴 수도 있고 감아 내리며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르곤 용접으로 하나하나 찍어서 만드는 점(点)은 특히 ‘마음 담기’에서 많은 공을 들인 부분이다.
“실용성을 위해 하나하나 만져보면서 날카롭지 않게 다듬고, 미적인 부분에서는 밀도에 더욱 신경을 썼지요.
두고 바라보는 것 또한 ‘사용’이라 생각합니다. 예전엔 생활용품이었으나 지금은 단지 존재로서 가치로운 달항아리처럼요.”
특히 하나하나 무언가와 접촉해 생겨난 점 수천 수만 개가 빛나는 풍경은 작가가 스테인리스스틸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테인리스는 연마할수록 빛이 납니다. 접촉할수록 밝아지는 것이 인간을 닮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빛은 존재와 존재가 서로 소통하며 신호를 나누는 광경을, 빛이 반사되고 굴절되는 모습은 우리네 관계를 닮았죠.”
그리고 그렇게 만든 면(面)은 금속이지만 흡사 흙으로 빚은 듯 부드러운 선이 흐른다.
달항아리 백자의 선이다.
“달항아리는 현대조각을 공부한 제가 도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이자, 다가가고 싶은 궁극적인 아름다움이지요.
인간의 손맛을 거쳐 따뜻한 예술이 되는 금속을 이용해 앞으로도 저만이 담을 수 있는 달항아리에 대한 이야기를 고민해 나가려 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그려낸 점과 선과 면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예술의 세계는 ‘1=1’ 그 너머에 자리하고 있어 상상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상상을 다시 우리 삶으로 끌어오는 데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먼저 선을 통해서는 저 멀리에서 들어오거나 확장되는 파동 혹은 울림을 상상해 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마음 담기’의 무한한 선은 카메라 장노출 시 나타나는 선, 혹은 LP판의 선과 같이 우리가 파악하거나 파악하지 못하는 것들을 기록하고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중간중간 비어 있는 곳은 순환을 말하는 것이고요.”
점이란 하늘에 떠 있는 별이자 지상에서 빛나는 우리 각자의 존재들이다.
용접할 때의 온도에 따라 점 각각의 색이 다르다는 것도 빛이 도달하는 거리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빛난다는 별을 닮았다.
특히 지상의 별들에 대해 그는 “우주에서 바라본 우리는 티끌과도 같지만 소중한 존재들이지요.
그런 것들을 ‘마음 담기’ 속 별에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면은 우주를 향한다.
“‘마음 담기’에 담은 마음이란 ‘우주에 닿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여기서 우주란 코스모스(cosmos)로서의 우주이기도 하지만 각 인간 ‘존재’로서의 우주를 말하는 것이기도 해요.
크기가 다른 작품을 여럿 배치한 것은 크고 작은 은하수가 펼쳐지는 듯한 풍경과 그 우주 속 ‘울림’을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세상에 떠 있는 존재 사이사이로 퍼져나가는 그의 작품 속 파동이 무한하다.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그 이상의 존재를 연결해 줄 신호를 담은 울림이다.
명상하는 마음으로 그 파동을 상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족하고 덜 외롭지 않을까.
“이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만이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무언가 우리보다 더 크고 위대한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거대한 위성 접시로 외계 세계의 신호를 잡아내는 데 성공한 영화 <콘택트: 지구 최후의 날> 속 주인공 천문학자의 웅변처럼 말이다.
이상길 작가의 마음 울림이 담긴 작품 ‘마음 담기’를 보는 이가 대자연의 파동에 공감해 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