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이중뚜껑 합>으로 경기도 공예대전에서 금상의 영예를 안은 양경철 작가.
답습에 갇히지 않고 전통을 재해석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전통 또한 등장한 시절에는 혁신이자 유행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가 새 시대에 보여주는 새로운 전통이 가슴 뛰는 이유다.
제 52회 경기도 공예대전 금상작 <백자 이중뚜껑 합>은 조선시대 왕실 옥새함에 영감을 받아 태어났다.
“옥새함 유물을 박물관에서 보고 무척 감동을 받았어요.
나라 도장인 옥새를 공들인 목재 주칠 상자에 겹겹이 담고 포장으로 또다시 감싼 모습에서, 소중한 것을 보관하기 위한 정성이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제가 느꼈던 감동을 조선시대 도자기를 대표하는 백자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양경철 작가가 느꼈던 옛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현대에 살린 <백자 이중뚜껑 합>은 장석 장식이 달린 뚜껑을 열면 전통 매듭공예로 꾸민 속뚜껑이 한 번 더 드러나는 독특한 구조다.
옥새함을 닮은 이 디자인은, 담은 의미도 좋거니와 이중 뚜껑이라 밀폐력이 강화되어 실용성 또한 높다는 설명이다.
“향이 잘 달아나지 않다 보니 차(茶)를 담는 함으로 많이 쓰세요.
‘소중한 것을 지킨다’라는 작품 메시지에 공감하셔서 아기 탯줄을 보관하는 태항아리나 팥이나 소금을 담아 액운을 막는 물건으로 쓰시는 분도 계시고요.”
합 곳곳 테두리와 연결 부위 등을 꾸미는 장식은, 옛 목가구나 대문에서 장식 혹은 경첩·보강·연결용으로 쓰는 금속 ‘장석(裝錫)’에서 따 왔다.
그의 작품이 분명 낯선 전통임에도 익숙해 보이는 것은 이렇게 한국의 전통 목공예의 특징 중 하나를 따온 덕이다.
뜻밖이었던 것은, 사진으로 보면 영락없이 금속 같아 보이던 이 부분 또한 도자기라는 것이었다.
“합에 쓴 것과는 다른 흙으로 금속 질감을 표현했지요.
장석은 문양에 따라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 또한 차용하여 작품에 담았습니다.
가령 물고기 모양 장석은, 잘 때도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처럼 항시 지켜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처음부터 이렇게 태어난 양 말간 얼굴을 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그 제작 과정은 그야말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흙은 말리거나 구울 때 축소되거든요.
따로 부분이 나눠져있지 않은 통짜 작품이라면 괜찮겠지만, 닫아 지키는 것이 주요 기능인 이 작품의 경우에는 뚜껑과 몸체의 이가 딱 맞아야 하다보니 만들기가 힘들었어요.
게다가 장석을 표현한 부분에는 다른 흙을 쓰니까 더욱 신경 쓸 게 많았죠.
흙마다 축소 정도가 다르거든요.”
그럴 때마다 유념한 것은 아버지의 교훈이었다.
“아버지가 목공예 일을 하고 계세요.
원래 직장을 다니셨는데, 회사원 생활을 하실 때도 만드는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다가 최근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죠.
그런 아버지께 꾸준함과 더불어, 무엇을 만들든 마무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꼼꼼함을 배웠습니다.”
양경철 작가는 30대 초반의 젊은 작가다.
약관을 갓 벗어난 나이. 도예에 대한 열정과는 별개로 전업 작가라는 인생길을 들어서는 데 고민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런 그였기에 이번 경기도 공예대전 수상은 더욱 뜻깊은 일이었다.
“혼자서 작업만 하다보면 잘하고 있는걸까 불안할 때가 있죠.
그런데 경기도 공예대전을 통해 여러 분의 평가를 듣게 되고, 감사하게도 과분한 상까지 받게 되니 잘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더 열심히 계속 하라는 뜻으로 알고 작품활동에 힘쓰겠습니다.”
앞으로 양경철 작가의 바람은, 그가 재해석한 전통이 새 시대의 새 전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작품생활 내내 전통을 새로이 해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옥새함과 장석장식 다음으로 풀어나갈 과제를 고민하는 한편, <백자 이중뚜껑 합>의 작품 특징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발전시켜 ‘이건 양경철 작가의 작품’이라고 떠올릴 수 있는 양식으로 정착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공예대전>이 힘껏 등을 밀어준 젊은 작가의 오랜 활약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