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역사 산책

길 따라사람 따라흐르는 이야기

경기도 역사를 담은 길

화성 용주사

경기옛길 삼남길 제6~10길은 화성시부터 오산시, 평택시에 이르는 약30km 길이다. 이 길에는 정조, 광해군, 인조, 맹사성, 권율, 김육, 공자등 수많은 역사적 인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걷기 좋은 4월. 길 따라 사람 따라 수백 수천 년 동안 흐른 그 이야기를 만나러삼남길 제6~10길을 걸어보자.

구지회 출처 경기문화재단

 

제6길 화성효행길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그리움이 서린 길

용주사·융건릉

소요 시간 1시간 50분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국가문화유산포털

 

화성효행길을 반쯤 걸었을 즈음에 만나는 용주사는 정조가 아버지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이다. 용주사라는 이름 또한완공을 축하하는 낙성식(落成式) 날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꾼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용주사 곁에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마지막 안식처 융건릉도 있다. 사도세자와 그의 빈 혜경궁 홍씨가 누운 곳을 융릉, 정조와 그의비 효의왕후가 잠든 곳을 건릉이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오랜 세월을 지나 드디어 한자리에 누운 모습이 다정하다.

 

용주사 화성시 송산동 187-2

융건릉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제7길 독산성길

권율 장군의 지혜와 노부부의 보시 이야기 담긴 길

독산성·세마대·보적사

소요 시간 2시간

 

화성 융건릉

 

독산성 가장 높은 곳 세마대에는 권율 장군의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 임진왜란 중 왜군이 성을 포위하고 식수가 부족한것을 조롱하자 장군은 독산성 가장 높은 곳에서 쌀을 말 등에붓게 했다. 멀리서 보니 흘러내리는 쌀은 마치 물처럼 보였고,말을 씻길 수 있을 만큼 물이 많다는 데 놀란 왜군은 싸움을포기하고 도망쳤다. 이후 이를 기려 이곳을 말(馬)을 씻긴(洗)높은 곳(臺)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성의 동문 쪽 보적사에도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 가난한 한 노부부가있었는데, 어느 날 집에 쌀이 거의 떨어졌다. 이대로는 어차피곧 죽을 테니 차라리 다른 이를 돕고자 부부는 남은 쌀을 먹지않고 절에 모두 기부했다. 그런데 절에서 돌아오자 오히려 창고에 쌀이 가득 차 있는 기적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이 절을 ‘보화가 쌓이는 절’이라는 뜻으로 ‘보적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독산성 오산시 양산동


제8길 오나리길

유교의 성인 공자를 기리던 사당 

궐리사·궐리사 성적도(闕里祠 聖蹟圖)·궐리사 은행나무

소요 시간 1시간 40분

 

궐리사 성적도 ⓒ국가문화유산포털

 

궐리사는 정조의 어명으로 건립한, 유교 성인 공자의 사당으로 그 이름도 공자가 자란 마을 궐리촌에서 유래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성적도가 보관되어 있다. 성적도란 공자의 행적을 담은 그림과 해설을 목판에 새긴 것인데,궐리사에 보관된 것은 1904년에 지은 것으로 총 60판이다. 그가치를 인정받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로 지정돼 있다.경내에 자리한 수령 약 400년 된 은행나무도 유명하다. 이 은행나무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궐리사를 세우기전, 공자의 후손 공서린이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은행나무에 매단 북으로 조는 제자들을 깨우곤 했는데, 그가 죽자 은행나무도 같이 죽었다. 그런데 200년이 지나정조가 이곳을 다시 방문하자 죽은 줄 알았던 은행나무에 새싹이 난 것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다.

 

궐리사 오산시 매홀로 3


제9길 진위고을길

신비로운 전설과 맹사성의 일화를 담은 길

진위향교·백현원

소요 시간 4시간 50분

 

진위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진위고을길은 삼남길 중 가장 긴 구간이다. 그 길 가운데에 있는 진위향교의 약 300년 된 회화나무에는 신비로운 전설이여럿 전해 내려온다. “이 나무에 맺힌 이슬을 맞으면 총명해진다”거나 “나무에서 밤마다 나던 울음소리가 식민지가 끝나자마자 뚝 그쳤다”는 이야기에서 당대 사람들의 소망을 엿볼 수있다. 향교에서 천을 건너 내려오면 조선 시대 국영 주막 백현원 터가 나온다. 이 주막에는 조선 초기 명재상 맹사성에 대한일화가 서려 있다. 어느 날 맹사성이 이곳에 묵던 중 한양으로과거를 치러 가는 선비를 만났다. 두 사람은 묻는 말에는 ‘공’답하는 말에는 ‘당’을 붙여 대화하기로 약속했는데, 선비가 맹사성의 너무나 검소한 행색을 보고는 은근 무시를 했다. 이를기억한 맹사성이 궁궐에서 과거에 합격한 그 선비를 다시 만났을 때 “과시는 잘 봤는공?” 하자 선비가 “죽을지어당” 했다고 한다.

 

진위향교 평택시 진위면 진위로 49


제10길 소사원길

백성에 헌신한 관리와 그를 사랑한 백성의 길

대동법시행기념비(김육대동균역만세불망비)

소요 시간 4시간

 

대동법시행기념비 ⓒ국가문화유산포털

 

소사원길에는 백성을 위해 헌신한 어느 관리와 그를 사랑한백성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광해군(재위 1608~1623) 즉위직후, 경기도에서 대동법이라는 새로운 조세법을 시행했다.이 법은 임진왜란 이후 피폐하던 민생에 큰 도움이 되었으나시행 지역을 확대하는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실학자 김육(1580~1658)이 대동법 시행 운동을 주도했고, 그의 노력 덕에 충청도에 이어 전라도에서도 대동법을다시 시행할 수 있었다. 이에 그가 사망한 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많은 이가 오가던 소사원에 비를 세웠는데, 이후 자리를 옮겨 전해진 것이 지금의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0호 대동법시행기념비(김육대동균역만세불망비)다.

 

대동법시행기념비 평택시 소사동

[어르신을 위한 큰 글씨]

세마대

: 말 등에 쌀을 부은 모습을 보고 말(馬)을 씻길(洗) 수 있을 만큼 물이 많다는데 놀라 왜군이 도망쳤다는 데에서 세마대(洗馬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보적사

: 가난한 노부부가 절에 가진 쌀을 모두기부하고 돌아오니 오히려 창고에 쌀이 가득했다. 이후 ‘부처님께 마음을바치면 보화(寶)가 쌓이는 절’이라는뜻의 ‘보적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궐리사

: 이 자리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공자의 후손 공서린이 죽자 생전에 그가 조는 제자들을 깨우기 위해 북을 매달아놓았던 은행나무도 같이 죽었다. 그런데 200년이 지나 정조가 이곳을 다시방문하자 죽은 줄 알았던 은행나무에서 새싹이 난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진위향교

: 약 300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회화나무와 관련해 “여기에 맺힌 이슬을맞으면 총명해진다”거나 “나무에서 밤마다 나던 울음소리가 식민지가 끝나자마자 뚝 그쳤다”는 등 신비로운 전설이 여럿 전해져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