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고양이

김현탁 (소설가)
골동품 수집광인 인철은 아침부터 휘파람을 불었다.
며칠 전, 골동품 중개상인 병호가 시골 고향동네에 도자기가 많이 묻혀 있는 곳을 알고 있다며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는 귀띔을 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도자기 수집에 깊이 빠진 인철에게 그보다 더 기분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잡동사니 도자기가 무려 삼백 여점이나 되었다. 옛날 선조들이 사용하던 물건을 보존하고 아낀다는 명분도 있었지만 전 재산을 털어 수집에 빠져 있었다. 이제 겨우 남은 것은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겨준 집 한 채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골동품 중개상이 도굴을 해서 싼 값으로 넘겨 준다니, 이 기회에 그걸 인수하여 비싼 값으로 되팔아 빛을 청산하고 싶었다. 인철은 횡재의 꿈에 젖어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틀림없는 거지?”
조바심이 난 인철은 병호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암, 틀림 없고 말고, 내가 확인하고 온 거야. 아마 고려시대 유물인 것 같았어. 그곳은 어릴 적부터 ‘무덤골’ 이라고 해서 무덤이 무척 많은 곳이야. 어릴 적엔 그 뜻이 뭔지 몰랐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소 풀을 먹이러 갔을 때, 깨진 도자기와 기왓장도 많이 나와 그걸 가지고 쇠금파리 놀이도 했었어. 보물이 숨어 있는 것도 모르고….그런데다 지금은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아무도 알 수 없어. 작업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야. 누구에게도 절대 말해선 안돼. 둘 만 알아야 해. 딴 놈들이 눈치 채면 언제 퍼 갈지도 몰라.”
“당연하지. 누구에게 이야기 해.”
“그건 그렇고 내가 지금 빚에 쪼들리고 있어 내일 당장 갚지 않으면 경매로 날아가. 그러니까 선금으로 일 억만 줘. 그다음 확인하고 나머지 일 억을 줘. 사실 빚에 쪼들리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넘겨 주지 않아. 아깝지만 할 수 없이 넘기는 거야.”
“정말, 믿을 수 있지.”
인철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빚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인철은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집을 담보로 돈을 마련해 둔 터였다.
“날씨가 흐린 날을 잡아 거사를 치러야 해. 복장은 등산복으로 하고, 괭이와 야전삽을 준비하자구. 포대자루도 큰 걸로 두 개 준비하고.”
인철과 병호는 손바닥을 소리 나게 부딪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인철은 수표를 꺼내 병호에게 건넸다.
드디어 디데이가 왔다. 새벽부터 날씨가 잔뜩 흐리고 금방 비가 쏟아 질 것 처럼 하늘이 먹구름으로 검게 덮여 있었다. 인철과 병호는 등산복을 차려입고 병호의 고향으로 향했다. 병호의 고향은 산이 야트막하게 올망졸망 솟아 있었다. 산을 끼고 몇 구비 돌아 좁은 농로를 따라 병호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산 입구에 들어서자 비석이 서 있는 오래된 무덤들이 즐비하게 보였다. 그곳을 지나 산봉우리쯤에 다다랐을 때, 지나오면서 본 무덤보다 큰 무덤이 나타났다.
“여기야, 쉿.”
병호가 손짓하며 입을 가렸다. 인철은 노다지 광산을 발견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돈방석이 눈앞에 아른거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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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콩트연재
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땅거미가 서서히 져 갔다. 어둠은 소리 없이 주위를 에워싸 내렸다.
“손전등을 켜.”
병호가 긴장된 얼굴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인철은 배낭에서 야전삽과 괭이를 꺼내 병호에게 건네주고 손전등을 켰다.
병호는 야전삽으로 흙을 조금씩 파내려 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청자 빛 도자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 정말이네.”
인철은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도자기 아래쪽으로 사람의 뼈 같은 것도 보이고 부서진 도자기 파편도 보였다. 병호가 숨죽이며 더 파내려가자 이번엔 금빛 귀고리가 보였다.
“야, 이건 정말.”
인철은 숨이 턱턱 막혔다. 그렇게 파내려가길 몇 시간, 많은 부장품이 나타났다. 인철은 병호가 꺼내놓은 골동품을 정성스럽게 신문지로 싸고 미리 준비해온 헌 옷가지로 한 번 더 동여맨 뒤 포대에 차곡차곡 넣었다. 사방이 깜깜하고 앞을 볼 수 없었지만 무섭지 않았다.
“어때, 노다지지? 아마 천 년은 된 것 같아.”
병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인철과 병호는 두 자루 가득 찬 포대를 어깨에 둘러매고 차로 향했다.
“이거, 싸게 주는 거야. 하나만 해도 큰 건 일 억이 넘을 거야 어서 나머지 한 장도 내 놔. 아까워 죽겠어.”
“아니. 그래도 정확한 감정은 해보고 줘야지.”
“감정 안 해 봐도 뻔하잖아. 어디 한 두 번 본 물건이야. 정 싫으면 그만둬. 돈 돌려주고 다른 사람에게 넘길 거야. 나도 이렇게 많이 나올 줄 몰랐어. 비밀유지 때문에 네게 주는 거야 쳇.”
“알았어. 알았어. 거 되게 비싸게 구네.”
인철은 행여 뺏길까봐 얼른 수표를 건네주었다.
“오늘, 횡재한 거야. 내 은덕을 잊지 말아.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누구에게도 얘기하면 안돼. 소문나면 너하고 나
김현탁 소설가
문학박사·한국현대문학연구소 소장·아주대 외래교수·경기문학인협회 회장·수원문인협회 회장 역임·1977년 수필문학 에세이 당선·현대문학 작품상 수상·한국예총예술문화상(문학)수상·경기도문화상(문학)수상·수원시문화상(예술부문)수상·저서 장편소설 <공범자>, 꽁트집 <꿈의 덫> 외 다수하고 어떻게 되는지 알지.”
이튿날.
인철은 차 안에 고이 모셔온 골동품을 창고로 옮겼다. 누가 볼세라 눈치를 살피며 쌓여 있는 신문지와 옷가지를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무려 삼십 여 점. 언뜻 계산해 보아도 십억 원의 가치는 돼 보였다. 인철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긴장이 조금 풀리고 전신에 힘이 솟았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물뿌리개로 도자기에 묻어있는 흙을 씻어냈다. 그리고 수건으로 도자기에 묻어있는 물기를 조심조심 닦아냈다. 아무리 봐도 빛이 너무 고왔다. 인철은 돋보기를 끼고 찬찬히 훑어보았다. 아뿔싸! 하마터면 뒤로 벌렁 나둥그레 질 뻔 했다.
“이건, 이건!”
도자기는 재현된 모조품이었다. 마치 오래된 것 인양 군데군데 흐릿한 때를 묻혀 놓은 것도 있었다. 인철은 숨이 멎어버릴 것 같았다.
“내 돈! 내 돈!”
인철은 악을 쓰며 소리쳤다. 얼른 병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이 전화기는 고객의 요청에 의해 수신이 정지되어 있습니다.’
인철은 혹시나 하고 귀걸이도 살펴보았다. 그것 역시, 금도금을 한 가짜였다. 인철은 망치를 들었다 즐비하게 놓여있는 도자기를 모두 부셔 버렸다. 마지막 남은 집을 저당 잡아 빌려온 돈인데, 눈앞이 캄캄했다. 일어나 널부러진 도자기 파편을 발로 짓이겼다. 그 소리에 놀란 고양이가 쥐를 잡으려 숨 죽여 있다가, 인철의 발악하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빳빳이 쳐 든 체 인철을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