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문

김현탁 (소설가)
꽃들이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며칠간 내리던 비가 그치자 꽃들은 아리따운 여인처럼 아미를 숙이고 다소곳이 나비처럼 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준혁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꽃잎을 살며시 드려다 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만물은 생명이 움트는 소리를 지천에 뿜어대고 있었다.
‘역시 봄은 봄이야. 봄이 오니 드디어 기쁜 소식이 들려오는구나.’
얼마 전, 모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냈던 준혁에게 서류심사에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지서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준혁이 입사 원서를 낸 회사는 서류도 많았지만 까다로운 조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 회사에 회장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입사하고자 하는 사원은 필히 교회에 다녀야 할 뿐만 아니라 세례나 침례를 받은 사람에 한해서 입사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어느 교회에 몇 년간 다녔으며 담임목사에게 세례 받은 날짜와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에 대한 목사의 친필 추천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준혁은 평소 무신론자여서 교회라곤 다녀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마침 교회에 다니고 있는 친구 성구에게 걱정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성구는 염려 말라며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며칠이 지났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준혁에게 성구는 공원 앞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모든 일을 제쳐 놓고 준혁은 부리나케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해보니 성구는 큰 가방 하나를 들고 있었고, 세치가 제법 희끗희끗한 친구를 소개했다. 친구는 오늘 준혁에게 침례를 할 목사님이라고 했다. 준혁이 어느 교회 목사님이냐고 물었다. 성구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렸다. 준혁은 그럼 어떻게 할 거냐고 눈짓을 보냈다.
“날 따라와.”
성구가 앞장을 서며 골목을 몇 바퀴 돌더니 인적이 드문 모텔 앞에 섰다.
“여긴 왜?”
“글쎄, 들어가 보면 알아.”
준혁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성구의 뒤를 따라 모텔 카운터 앞으로 갔다.
“방 하나 주세요. 욕실이 있는 방으로 주세요.”
“아니, 그런데 남자 세 분이 뭘 하려고 대낮에….”
모텔 주인이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성구는 친구를 가리켰다.
“아, 네, 이분이 목사님이고 셋이서 잠깐 기도하고 기록할 일이 있어서요.”
“그런데 왜, 모텔에….”
“아, 긴히 기록을 좀 남겨야 할 일이 있는데, 교회는 공사 중이라서….”
“혹시, 이상한 거 촬영하려는 건 아니죠?”
“아닙니다. 삼십분이면 됩니다.”
모텔 주인은 연신 미심쩍은 눈초리로 세 사람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네, 이상한 거 찍으면 정말 안 됩니다.”
“그럼요. 정 못 믿으시면 나올 때 기록한 걸 보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
주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셋은 객실로 들어갔다. 객실에 들어가자마자 성구는 욕조에 물을 틀었다.
“뭘 하려고?”
“음, 오늘 네게 거룩한 침례를 받게 하려고 한다. 어서 옷 벗어. 속옷까지.”
“옷을 벗으라니?”
“어서 시키는 대로 해. 속옷 벗고 이 가운을 입어.”
성구가 가방에서 가운을 꺼내 한 벌은 성구에게 주고 한 벌은 친구에게 건넸다. 준혁은 돌아서서 가운을 입었다. 그 사이 욕조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어서 이 욕조 안으로 들어가. 비스듬히 누워. 축도를 하고 침례의식을 치를 거야. 난 증거물로 사진을 찍을 테니까.”
준혁은 성구의 지시에 따라 욕조 안에 몸을 뉘었다. 그러자 성구의 친구는 준혁의 이마를 짚으며 기도를 했다.
“제발, 이번에는 이 불쌍한 양에게 취업의 문이 열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행복한 삶이 되게 하소서.”
기도를 마친 그가 준혁의 머리를 물속으로 눌렀다. 갑자기 머리를 누르자 준혁은 물을 먹고 캑캑 거렸다. 성구는 그런 과정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잠깐 동안 의식이 끝나고 준혁은 욕조 밖으로 나왔다.
“자, 이젠 증거도 충분하고, 서류에 담임목사님 성함과 신앙생활은 내가 써 줄게. 내가 그교회 목사님 성함 알아왔어.”
“괜찮을까?”
“괜찮아. 이건 사회적 범죄도 아니고 취업하려는 목적인데 젠장, 별걸 다 요구해.”
준혁은 성구 덕분에 침례 받은 사진을 첨부해서 서류를 회사로 보냈다.
드디어 면접날이 왔다.
준혁은 새로 사 입은 양복으로 치장을 하고 면접장에 도착했다. 몇 명의 면접이 끝나고 준혁의 차례가 왔다.
“축복 교회라, 이 교회에 다닌 지 오래됐습니까?”
“네, 오 년 정도.”
“그래요. 이 교회의 담임목사 김정식이 나와 신학대학 동기인데 반갑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다른 교회로 옮겼다고 들었는데….”
준혁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이 친구, 그래도 전화 한 통 해 주지. 훌륭한 인재라 추천했나본데, 전화 한 번 해 볼까.”
면접관이 수화기를 들었다. 준혁은 간이 쪼그라져 들었다. 제발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아니, 외국이라도 나갔으면, 다 된 밥인데, 준혁은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뭘, 뭐라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아니, 네 친필이 여기 있는데, 뭐야 그럼 이건……”
준혁의 얼굴이 노래졌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갑자기 어지럼증이 일며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준혁은 병원 베드에 누워 있었다.
“이 여리고 약한 양에게 죄악에서 빠져나오게 구원을 주소서.”
누군가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가물가물 거렸다. 눈꺼풀이 점점 내려앉았다. 그 위로 하늘 높이 날아오르던 꽃잎이 우수수 폭포처럼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