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시, 왕들이 묻힌 이곳이 길지일지니

 

구리시, 왕들이 묻힌 이곳이 길지일지니

태조의 음택에 관한 한 전설이 전해집니다. 어느 날 정사에 골치가 아프던 태조가 길을 나섭니다. 자기가 묻힐 묏자리를 물색하다 지금의 동구릉 자리를 발견했습니다. 동문수학하던 정씨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이제 나 후세에 들어갈 자리를 마련해 놓았으니 이내 모든 시름을 잊었다네.” 이후 정씨가 살던 곳이 ‘걱정을 잊었다’는 뜻의 망우리가 됐다고 전해집니다. 구리시(九里市)에는 조선시대 아홉 왕이 잠든 동구릉이 있습니다. 실록에 의하면 태조가 죽은 뒤 ‘한양에서 20리쯤 떨어진 검암산 자락에 길지가 있다’는 소식을 접한 하륜이 답사해 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조선왕조 500년의 숨결이 고스란한 도시

동구릉은 조선왕조 전 시기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태조의 건원릉부터 문조와 신정왕후의 수릉까지 9기 17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능제의 변화와 조선왕조 500년의 부침이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풍수지리학적으로 길지로 손꼽힙니다. 동구릉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건원릉의 억새 봉분입니다. 태종이 태조의 고향인 함흥 땅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사적 193호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근 · 현대사의 보고

구리에는 근 · 현대사의 단면이 잠들어 있습니다. 망우리 묘역에 한용운을 비롯해 오세창, 문일평, 방정환, 오기만, 서광조, 서동일, 오재영, 유상규 등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영면하고 있습니다. 구리시에서 진행하는 ‘망우, 독립운동가를 만나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불꽃같이 살다간 그들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남산 최대의 고구려 유적지

기원전 3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형성됐습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에 속했으며, 475년부터 551년까지 고구려에 예속됩니다. 이때 고구려 군사시설인 보루가 아차산 일대에 조성됐습니다. 이 보루들에서 3,000여 점의 고구려 유물과 ‘간이 대장간 터’가 발굴됐습니다. 조선시대 중기에는 ‘구지’라고 불렸고, 1914년 양주 ‘구’지면과 망우‘리’면, 노해면의 일부 지역이 병합되면서 ‘구리’라고 불렸습니다.

 

역사와 생태 체험의 도시, 구리

• 동구릉

조선시대 왕릉 아홉 개가 옹기종기 모인 곳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언뜻 보면 비슷한 모습을 지닌 듯해도 각각의 개성과 사연이 다릅니다. 풍광이 아름다운 곳은 선조의 목릉이고, 헌종의 경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한 삼연릉입니다. 문종의 현릉은 문무인석의 얼굴 표정이 익살스러워 자꾸 쳐다보게 됩니다.

•  고구려대장간마을

아차산 4보루에서 발견된 ‘간이 대장간’을 근거로 건립한 곳입니다. 2008년에 문을 열었고, 면적은 3,300m²(1,000평) 규모입니다. 집들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지었고, 이곳에서 드라마 <태왕사신기>와 <사임당> 등을 촬영했습니다. 고구려 유물 전시관과 지름 7m의 물레방아도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  장자호수공원

한때 오폐수로 악취가 나던 장자못의 수질을 개선해 조성했습니다. 그 옛날 장자못에는 쇠똥을 스님의 바리때에 퍼 넣은 장자라는 부자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생태체험관 · 장미원 · 연꽃습지원 등을 갖췄고, 주말이면 각종 음악회와 전시회 등이 열립니다.

•  구리타워

토평동 쓰레기소각장의 굴뚝을 활용해 만들었습니다. 지상 100미터 높이에 전망대와 레스토랑을 설치하고, 부속시설로 실내수영장 등을 조성했습니다. 신재생에너지홍보관과 곤충생태관도 인근에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홍보관에서는 다양한 에너지를 체험할 수 있고, 곤충생태관에서는 사계절 살아 있는 나비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