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 이 땅에 극락정토의 기운이 서려 있나니

안양시, 이 땅에 극락정토의 기운이 서려 있나니

신라 효공왕 4년(900) 때의 일입니다. 왕건은 지금의 시흥과 과천을 징벌하기 위해 삼성산을 지나다, 산꼭대기의 구름이 다섯 가지 빛으로 반짝거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때 구름 밑에서 만난 능정 스님이 자신과 뜻이 같음을 알고 절을 세우고, ‘안양사’라 이름 지었습니다. 훗날 불가에서 극락정토를 뜻하는 이 말이 이 땅의 지명이 됐습니다. 안양시(安養市)라는 이름 안에는 이상향을 향한 꿈이 서려 있는 셈입니다.

 

 

안양을 지키는 3대 산

안양은 아름다운 자연 안에 있습니다. 서남쪽으로 수리산이 우뚝하고, 북쪽으로 관악산과 삼성산 능선이 길게 이어집니다. 해발 489m인 수리산에는 최경환의 순교지가 있습니다. 관악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삼성산에는 안양사, 삼막사, 염불암, 망월암, 반월암 같은 사찰이 즐비합니다. 날씨가 맑은 날, 관악산 망해암에 올라 바라보는 안양 시가지 풍경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

고구려 때는 ‘율목군’으로 불렸습니다. 1914년 과천, 시흥, 안산군이 시흥군으로 통합되며 오늘날 안양의 기반이 됐습니다. 1989년에는 평촌에서 청동기시대 지석묘가 발견됐습니다. 선사시대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이로써 우리 조상들이 청동기시대부터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았음을 알게 됐습니다. 비록 작은 도시였지만 일찍부터 공업이 발달하고 여러 방면으로 뻗어갈 수 있는 도로가 건설돼 교통의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독특한 문화유산을 품은 곳

안양에는 독특한 문화유산이 많습니다. 정조는 융릉 참배때 행렬이 편히 건너갈 수 있도록 홍예석교를 축조했습니다. 백성들이 만년 동안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안교’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석수동 중초사지 당간지주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원효와 의상, 윤필이 수도했다는 삼성산 삼막사에는 서울 근교에서는 보기 드문, 자연석으로 된 남녀근석이 있습니다. 이곳이 민간신앙의 한 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자연과 예술이 어울린 도시, 안양

•  만안교

1795년 정조가 융릉 참배를 위해 축조한 홍예석교입니다. 당초의 참배 행렬은 과천을 경유하는 것이었으나, 그 길에 사도세자 처벌에 적극 가담한 ‘김상로의 형약로의 묘’가 있어, 안양천을 경유하는 새로운 경로를 만든 것으로 전해집니다. 길이 31.2m에 너비 8m의 다리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옛 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  안양사

안양시 지명 유래의 근원지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때 최영 장군이 7층 전탑을 세우고 왕이 내시를 시켜 향을 보냈으며 승려 1,000명이 불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경내의 부도와 귀부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습니다.

•  안양예술공원

안양유원지의 새로운 이름으로, 이곳에서는 2005년부터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진행됐습니다. 이 행사로 국내외 유명 작가 73명의 설치 예술작품이 계곡과 산 곳곳에 설치됐습니다. 환경·순례·놀이·정원 등 주제별로 정리된 공원 내부에 상상 속의 동물, 투명전망대 등 기발한 작품들이 가득합니다.

•  수리산성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의 아버지 ‘최경환’의 순교지로, 2000년에 순례지로 지정됐습니다. 초기 한국교회사의 역사와 순교의 아픔이 서린 곳으로, 그의 가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행을 표현한 조형물도 설치돼 있습니다.

•  병목안시민공원

병목처럼 좁은 마을 입구로 들어가면, 병 안처럼 골이 깊고 넓어진다고 해 붙은 이름이 병목안입니다. 이곳의 시민공원에는 채석장 절개지 사면을 이용해 만든 인공폭포와 수리산을 상징하는 석탑이 있습니다. 수리산의 산행 기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