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정조의 효심과 정치적 꿈이 깃든 도시이노니

 

1789년 조선 22대 왕 정조는 양주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의 화산으로 옮겼습니다. 이후 수원에 자신의 꿈을 담아 화성을 쌓고, 1년에 몇 차례씩 화성행궁에 머물며 사도의 묘를 찾았습니다. 즉위 19년이 되는 1795년 윤 2월 9일 아침,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의 묘를 찾았습니다. 두 분이 회갑이
되는 해였기에, 또 정치 개혁의 뜻이 담긴 화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때였기에, 이 날의 행차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백성들이 사는 공간을 둘러 안은 화성

정조가 왕위에 올랐을 당시 조정은 남인과 노론, 소론으로 나뉘어 대립이 심했습니다. 신하들의 파벌 싸움을 해결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또 수도 한양의 남쪽을 방어하기 위해 정조는 백성들이 사는 공간 전체를 감싸는화성을 쌓고 새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행정, 상업, 주거기능을 두루 갖춘 국방요새인 화성의 완공으로, 수원은 자급자족의 기반을 구축한 도시가 됐습니다.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애달픈 사부곡

현릉원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 정조는 지지대고개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멈춰 뒤돌아본 자리에는 아버지 사도의 능이 있었고, 그를 향한 정조의 애달픈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수원과 의왕의 경계에 있는 지지대고개는 본래 사근현이라고 불렸지만, 이 곳을 넘어서면 더 이상 사도의 능을 볼수 없는 안타까움에 정조의 발걸음이 지체돼 한자로 ‘느릴 지(遲)’자를 써 ‘지지대’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사통팔달한 경기 남부지역 교통의 요지

수원은 삼한시대 마한의 모수국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물웅덩이가 많은 벌판’이라는 뜻으로, 고구려 때는 같은 뜻의 ‘매홀’로, 통일신라 때는 ‘수성군’으로 불렸습니다. 사통팔달한 지리적 위치로 예부터 서울의 남쪽 관문 구실을 했고, 화성 축조 이후에는 충청도나 전라도에서 큰길을 따라 서울을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정조의 꿈’ 수원화성을 즐기는 6가지 방법

 

[성곽 트레킹]
수원화성을 가장 자세히 볼 수 있는 방법은 ‘걷는 것’입니다. 5.74km인 성곽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가량으로, 화성에서 가장 높은 서노대에서는 성곽일대 풍경이 한눈에 보입니다.

[자전거택시 투어]
수원화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스토리를 들으며 자전거로 화성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탈거리입니다. 출발지와 매표소는 화성행궁, 화홍문, 연무대 세 곳에 있고 투어는 1시간 가량 진행됩니다.

[화성어차 투어]
화성어차는 순종이 타던 자동차와 조선시대 국왕의 가마를 모티브로 제작된 관광열차입니다. 화성행궁과 전통시장, 연무대, 화홍문, 화서문 등 수원화성의 주된 관광 포인트를 순환합니다.

[전통시장 투어]
정조가 화성을 쌓은 이후 팔달문 인근으로는 시장이 발달합니다. 지금도 영동시장을 중심으로 지동시장, 못골시장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2017년에는 영동시장 28청춘 청년몰도 개장됐습니다.

[무예24기 관람]
오전 11시(월요일 제외)에 맞춰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에 도착하면 무예24기 공연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장용영의 군사들이 익혔던 무예를 고증을 통해 복원해낸 공연으로 30분간 시연됩니다.

[플라잉수원]
150m 상공에서 수원화성은 물론 수원시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헬륨기구입니다. 창룡문 주차장에서 이륙하고, 기구는 상승과 하강 시간을 포함해 20여 분 탑승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