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사람이 살기 좋은 ‘수중수변’의 땅이노니

조선시대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에워싼 ‘수중수변’을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두물머리에서 만나 한강으로 흐르는 처음의 자리가 바로 남양주 조안면입니다. 이곳은 예부터 뱃길이 발달해 물자가 풍부한 데다 강의 퇴적토로 문전옥답이 넘쳐나 가히 살 만한 땅으로 꼽혔습니다. 2010년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으로, ‘조안’이란 이름처럼 ‘새가 편안히 깃들만한’ 곳입니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던 터

한강의 북안에 접해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습니다. 화도면 감터와 와부읍 송촌리·진중리·능내리에서 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됐고, 지금동, 수석동, 선암리 등 한강변에서 흑요석기와 즐문토기 등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굴됐습니다. 양주군에 속해 있다 1980년 4월 1일, 양주의 남쪽지역이라는 뜻의 ‘남양주군’으로 분리됐습니다. 이후 1995년 미금시와 통합돼 남양주시로 승격됐습니다.

왕릉과 원찰, 사대부 묘 즐비한 곳

남양주에는 왕릉이 많습니다. 왕족들의 무덤과 그 원찰이 있고, 사대부의 묘도 많습니다. 세조와 정희왕후의 광릉, 단종 비 정순왕후의 사릉, 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 순종과 순명효황후·순정효황후의 유릉, 광해군의 묘와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김씨의 성묘, 순조의 생모 수빈박씨의 묘인 휘경원이 있습니다. 이 중 광릉은 검약하게 조성돼 백성의 고통과 국가에서 쓰는 돈을 크게 줄였습니다.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사대석을 쓰지 말라”는 세조의 유언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다산이 나고 자란 실학의 도시

남양주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입니다. 오랜 유배 생활 끝에 돌아와 생을 마친 곳이기도 합니다.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에 선생의 생가가 복원돼 있고, 그의 일대기와 업적을 정리한 기념관 등이 있습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어우러지는 이곳에서 선생은 <여유당전서>를 가다듬고 <흠흠신서>와 <아언각비> 등을 저술했습니다. 2012년에는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자 했던 선생의 삶이 유네스코 이념과 일치해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도 선정됐습니다.

 

 

 

 

 

 

 


선조의 지혜와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남양주

 

[다산유적지]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처음과 끝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선생의 생가인 ‘여유당’(복원)과 묘, 기념관, 문화관 등이 있고, 바로 옆에는 실학박물관도 있습니다. 매년 9월에는 이곳에서 ‘다산문화제’도 펼쳐집니다.

[수종사]

운길산 중턱에 자리한 천년 고찰로 빼어난 전망을 자랑합니다. 조선 전기 학자인 서거정이 ‘동방 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칭찬했을 정도입니다. 2014년 3월 12일 명승 제109호로 지정됐습니다.

[능내역]

중앙선에 있던 기차역으로 2008년 12월에 폐역됐습니다. 한동안 버려져 있다 ‘다산길’로 생기를 되찾았고, 이후 자전거쉼터와 갤러리로 변모했습니다. 사진 촬영지와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 유명합니다.

[광릉과 홍·유릉]

광릉은 세조와 정희왕후가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홍릉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합장릉이고, 유릉에는 순종과 그 왕비 순명효황후와 순정효황후가 합장돼 있습니다. 광릉은 능역이 간소하고, 홍·유릉은 이국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