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 가는 세대 갈등 해법 찾기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들어야 한다”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실은 모두들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입장에서만 상대를 보려고 하다 보니 어긋난 조언을 반복하고 상황에 맞지 않는 이야기인 것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박경석 경영학 박사, ‘사단법인 꿈에품에’ 상임대표
UN 해비타트 Youth 한국자문위원
아들이 서운한 슈퍼마켓 사장님 이야기
최근 동네가 어수선하다 싶더니 골목 어귀 슈퍼마켓에 결국‘임대문의’ 공고가 붙었다.십여 년간 그 자리를 지켰던 집이었는데 어쩐지 아쉽다는 아내의 말에, 어제는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들러 간단히 장을 봤다. 계산대를 지키고 선 노 사장님 표정이 영 굳어 있길래 넌지시 물었다. “이제 장사 안 하시나 봐요?” 그러자 봇물 터지듯 노 사장님의 하소연이 쏟아졌다. 얘기인 즉슨, 얼마 전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 취업을 준비 중인 아들에게 당분간 가게 운영을 맡아 달라고 했는데 곧잘 장사를 하더란다. 그래서 이 기회에 장사를 해보라 권유를 했더니 아들이 대뜸 거절을 했다고. 동네에 불고 있는 이주 바람이며, 새로 생기는 가게들 얘기며, 자영업 통계 등을 줄줄이 늘어놓더니 “이대로 구멍가게 유지하는 걸로는 안돼요. 곧 건물주가 세 올려 달라고 할게 뻔한데, 그랬다가는 얼마 안 가 망해요. 빚이나 안 생기면 다행이죠” 라며 입을 닫았단다. 하소연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평소 아내와 친분이 있어서 였는지 오며 가며 쌓은 정이 생각보다 두터웠던 것인지 사장님은 물정 모르는 아들이 규모 작은 슈퍼마켓이라고 만만히 본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요즘 젊은 애들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불평만 많다더니, 세상에! 내 아들이 그럴 줄 누가 알았겠수?” 순간 얼마 전 특강을 나갔다가 만났던 대학생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밝게 웃고 있지만 어딘지 지쳐 보였던 그들의 얼굴이 그 순간 떠오른 것은 아마도 그 슈퍼마켓 사장님의 아들이 ‘취업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어려워진 시대, 갈등은 깊어 가고
자원봉사 경력이라도 한 줄 더 쌓기 위해 공부하는 틈틈이 무엇이든 해 보려는 학생들도 어쩌면 집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보면 지방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세상 물정도 모르면서 봉사는 무슨 봉사냐”는 핀잔을 들었다는 학생이 있었다. 해비타트에 지원해 해외 경험을 늘리고 싶다는 여학생에게 “유학 갔다 오면 결혼하기 어렵다더라”며 말리는 어머니도 있었다고 들었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실업률 통계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의 삶이 팍팍해진 만큼 기성세대의 삶도 힘겨워졌다. 급격한 고령화와 부족한 사회안전망으로 인해 노인 세대의 삶은 더 빠른 속도로 기울고 있다.서로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보니 상황은 점점 복잡해지고 만 있다. 자식세대의 풍요를 만들기 위해 젊은 시절을 온전히 바친 기성 세대는 더 이상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자식 세대가 서운하다.경험 외에 남은 것이 없기에 무엇이든 조언을 하고 싶지만 시대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기성 세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젊은이들도 섭섭하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쟁처럼 학창시절을 보내고 취업의 문턱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것도 힘겨운 일인데, 기성세대는 달라진 환경은 보지 않고 ‘노력하라’는 주문만 하기 일쑤다. 노력을 안 해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데 자꾸 과거의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세대 간의 갈등은 깊어진다.
대화와 경청에서 찾는 작은 희망
자신의 입장에서만 상대를 보려고 하면 어긋난 조언을 반복하고 상황에 맞지 않는 이야기인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최근 새 점포들이 생기면서 유동인구가 조금씩 늘고 있다. 도시재생 관련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을 보면 얼마 안 있어 젠트리피케이션 바람이 불것도 같다.어쩌면 현재 상황을 정확히 보고 있는 것은 슈퍼마켓 사장님의 아들일지도 모른다. 동네의 작은 슈퍼마켓이 살아남는 길은 유동인구 증가가 아니라 안정적인 상권 확보에 있기 때문이다. 정말 어쩌면 건강상의 이유로 아들과 영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 사장님으로서는 큰 손해를 미연에 방지하는 계기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슈퍼마켓 사장님에게 전하지 않았다. 당장 사장님에게 필요한 것은 하소연이었을 것이다. 청하지 않은 조언은 잔소리일 뿐이다. 가게가 완전히 문을 닫기 전에 사장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오면 좋겠다. 슈퍼마켓 사장님이 아들의 이야기를 좀 더 찬찬히 들어 보게 되기를 바란다. 한 집 안,나아가 한 사회의 세대 갈등을 봉합할 작은 희망은 여전히 대화와 경청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