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보여준 우리 경제 현실
정부와 시중은행들은 해마다 기업신용위험을 평가해 부실 징후가 있는 기업을 걸러낸다. 그중 경영 정상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기업들은 기촉법, 통합도산법 등을 적용해 시장에서 퇴출한다. 회생여지가 있는 기업과는 채권금융기관이 자율협약을 맺어 인력 감축,자산 매각 등을 시도한다. 2009년 금호, 2012-2013 동양과 웅진, STX 등이 이렇게 워크아웃과 기업회생절차를 밟았다. 지난해 10월부터 정부는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관계부처와 국책은행이 참여하는 구조조정 협의체를 운영하며 조선·해운·건설·철강·석유화학 등 5개 경기민감 업종에 집중했다.
글 황예랑 (한겨레21 기자)
세계 1위 한국 조선·해운업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한국 조선업은 8년 전만 하더라도 수주잔량 세계 1위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해상물동량이 줄고 선박 발주가 줄자 대형 조선업체들은 해양플랜트 건설에 뛰어들었다. 정부도 해양플랜트를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2014년 이후 유가가 반토막 가까이 하락했다. 건설 경험이 많지도 않으면서 출혈경쟁 하느라 저가 수주를 했던 해양플랜트 건조 일정이 늦어지며 조선사 발목을 잡았다.
단, 조선·해운업이 경기에 민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특수성 만으론 지금의 위기가 설명이 안된다. D해양은 2000년 이후 산업은행이 대주주였다. 산업은행 관료들이 퇴직 후 D해양 주요 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와 가까운 인사들이 사외인사로 임명됐다. ‘낙하산’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산업은행은 D해양 매각에 실패하고 재무구조 개선을 끌어내지 못했다.
사실 해운업 불황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물동량 감소로 해운업체들은 8년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2009년 해운산업 구조조정을 시행해 중소 해운사들을 퇴출시킨 적 있다. 대형 해운업체들은 직접 선박을 구입해 항로에 투입하는 대신 다른 선주들에게 선박을 빌리는 방식으로 몸집을 가볍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운임료가 점점 떨어지면서 비싼 용선료는 부메랑이 됐다. 해당 기업 임원들의 미숙한 경영도 위기를 부채질했다.
구조조정, 어디로 화살이 날아갈까?
기업 구조조정에 정답은 없다. 정부, 채권금융기관, 경영진, 노동자 등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가 많은데다, 서로의 이해가 극명하게 다른 탓이다. 전문가들의 해법도 엇갈린다. 모두가 만족하는 구조조정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구조조정 논의가 기형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논의의 중심축이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곁가지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피해가 고스란히 노동자에게만 전가되는 것도 문제다. 조선업 종사자는 18만여 명에 이른다. 정부는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정해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퇴직자 맞춤형 전직 지원서비스 등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대규모 실업 사태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지만, 기업 부실에 책임 있는 정부나 국책은행 관계자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는다.
대우조선해양을 책임진 산업은행은 정부 지분 100%의 국책은행이다. 경영진도 마찬가지다. 전 한진해운 회장은 회사가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직전에 보유 주식 27억원어치를 모두 팔아치웠다.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박상인 경실련 재벌개혁위원회 위원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은 “그동안 이어져온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을 답습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새로운 틀을 짤 필요가 있다.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구조조정 책임과 손실 부담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국책은행에 추가 출자가 이뤄질 경우 국책은행 경영진과 은행 감독에 책임 있는 정부기관 담당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