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을의 일이다. 26개월된 수민(가명)이가 응급실에 입원했다. 수민이의 부모는 수민이를 학대했다. 수민이와 부모를 격리시키고 학대 평가와 치료를 할 필요가 있었다. 병원에 온 수민이는 걸을 힘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 작고 말랐다. 아이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선생님 등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숨도 쉬지 않고 온몸에 힘을 주며 긴장하고 있었다. “수민아, 수민아” 내가 여러 차례 이름을 부르자 수민이는 겨우 고개를 들어 멍한 눈으로 힘없이 나를 바라봤다. “선생님 등에서 내려와 걷자”고 말하자 갑자기 병실이 떠나갈 듯 목 놓아 울었다. 수민이의 부모는 아이가 자해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걸을 수도 없을 만큼 작은 아이가 자기 등과 엉덩이를 자해할 수 있었을까?
수민이는 3주 정도 병원에서 지내며 체중 등 여러 가지 신체적 문제가 해결 된 후 퇴원했다.
나는 3개월 후 수민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수민이를 양육해 주시는 선생님과 수민이가 함께 병원에 방문했을 때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여전히 작았지만 체중도 1kg이나 늘었고 무엇보다 혼자 걸어서 진료실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 말 한마디 할 수도 없을만큼 겁에 질려 있던 아이가 이제는 “안녕하세요”라며 배꼽인사까지 할 정도가 됐다. 그리고 또 6개월 뒤 수민이는 조금 더 크고 단단해진 상태로 내원했다. 수민이의 경우 어린시절부터 부모의 학대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발육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지만, 부모와 분리 되고부턴 적절한 환경이 제공되며 호전되고 있었다. 다만,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수민이는 여전히 긴장하고 불안한 상태다. 3개월에 한번씩 수민이를 보고 있는데 최근 어른들이 안보는 틈을 타 동생들을 밀치고 때리는 행동을 보이고 있어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할 것 같다. 부모에게 받은 학대가 수민이의 어린 마음과 뇌에 많은 생채기를 냈기 때문이다.
아동학대는 모든 사회에서 존재해왔다. 지금까지 학대는 ‘가정사’로 다뤄졌으나 가족이 적절하게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1989년 ‘UN 아동권리협약’은 국제법으로 아동 학대 및 방임을 포함한 아동에 관한 문제에 국가가 공식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0년 아동법이 개정되면서 아동학대 문제 해결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2000년에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아동학대의 빈도는 신체학대(23.5), 방임(20.2), 정서학대(19.0%)로 상당수의 아동들이 학대 및 방임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보고에 따르면 매해 신고접수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는 아동학대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이 증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아동에 대한 신체적 학대는 두뇌손상, 내부 장기 파열등의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기게 되고 방임으로 인해 성장실패가 초래되기도 한다. 이런 신체적 증상 외에도 정신적 후유증(지능저하, 충동적 행동, 심한 불안, 사람에 대한 불신, 병적인 대안관계, 우울감 등)과 심리적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특히 어려서부터 학대를 당한 아이들의 경우 다음과 같은 정신병리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지적 기능장애
학대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리고 학대의 정도가 심할수록 아이들은 다양한 지적 장애를 경험하게 된다.
감정조절의 이상
영유아기는 부모와 안정된 애착을 경험하면서 감정을 익히고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며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시기다. 이 시기 주 양육자의 상호작용에 방해를 받거나 거부감을 느끼게 되면 만성 스트레스로 인해 쉽게 불안해하고, 절망감, 불안 등을 보이게 된다.
자아손상
반복적인 처벌, 구타, 정서적 학대를 통해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란 존재가 잘못해서 처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자신에 대한 나쁜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자신을 벌 받아 마땅하고 늘 학대 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내가 문제이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아이들은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위의 증상 외에 학대 받은 아이들은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고 공격적인 행동이나 자기 파괴적 행동 등 다양한 정신병리를 보이게 된다.
최근 매일 매스컴에서 끔찍한 아동학대범죄가 다뤄지고 있다. 사회적 변화와 법적 변화와 맞물려 쉬쉬하던 일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훈육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감정을 아이들에게 분풀이하듯 학대하는 가해자들을 엄중 처벌하고, 학대받는 아이들은 우리 사회가 보듬고 우리 어른들이 지켜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