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 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그곳, 수원 지동시장

정조대왕부터 지금까지 200여 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그곳

수원 지동시장

 

지동시장을 마주하고 선 한 외국인.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시장을 올려다봤다 반복하기를 수차례. 외국인은 한참 동안 지동시장을 지그시 올려다봤다. 성곽의 모습을 한 시장이라…. 고즈넉한 듯 신비한 지동시장의 첫인상이 그 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리라. 200여 년 이상의 긴 역사를 지닌 지동시장. 길고 긴 이 역사의 시작이 조선 시대 정조 대왕이라고 하니 지동시장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자못 궁금해졌다.

 

정조의 효심에서 시작된 지동시장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며 사비를 털어 만든 시장이 여기 지동시장이자 남문시장입니다!” 최극렬 지동시장 주식회사 대표이사는 200여 년 전의 이야기를 꺼냈다.

“정조는 세자에 책봉됐지만,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으로 손꼽힌 수원 화산으로 옮겼죠. 당시 화산에는 읍치가 있었고, 이 읍치를 지금의 팔달산 아래로 옮기게 했죠. 이곳에 마을이 생기니 자연스레 생필품을 사고파는 큰 장이 서게 된 것입니다. 이 장이 바로 오늘날의 남문시장이요, 지동시장의 시초인 거죠.”

그는 “정조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화성 축성을 시작했다”며 “이를 위해 모인 인력들의 생필품 조달처 또한 이곳 시장이었던 만큼 장은 더 커져만 갔다”고 설명했다. 놀라운 것은 당시 정조가 개인 자금 6만 냥을 내줄 만큼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유인즉 당시 남문시장을 일으키는 자들은 바로 그를 지지하는 선비 출신의 상인들이었다. 이 시장으로 경제를 살리고 강한 왕권을 형성하려 했던 정조의 큰 뜻을 엿볼 수 있다.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화성 밖의 성 밖 시장인 남문시장. 이 남문시장은 팔달문을 중심으로 모인 9개 시장, 즉 지동시장·영동시장·미나리광시장 등 모두를 칭한다. 그렇게 성 밖 시장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또 현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 수원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따로 또 같이 아주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동시장의 명물 순대 타운

수원 화성의 정문을 통과하듯 지동시장의 아치형 문을 통과해 들어오니 형형색색의 제철 과일이며 식육점, 설렁탕 가게, 소머리 국밥집 등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지동시장의 상징, 노란 간판의 순대 타운이 눈에 들어왔다. 왜 지동시장의 상징이 순대가 됐을까.

“백화점과 마트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 지동시장에서 순대가게만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고, 순대 특화 구역을 만들자고 했죠. 차츰 이곳의 순대가 유명해졌고, 오늘날의 명성이 만들어졌습니다(웃음).”

지동시장의 순대 타운은 수원 사람은 물론 전국의 순대 마니아들 사이에도 명성이 자자하다. 지동시장 순대 타운은 서울 신림동 순대 타운과 안양 중앙시장 순대 타운과 함께 전국 3대 순대 타운으로 손꼽힌다고. 그도 그럴 것이 지동시장에서 만들어 파는 지동순대는 대부분 재료가 국내산이다. 소금조차 국내산의 품질 좋은 천일염을 쓴다.

“이모, 순대국밥 두 그릇요!” “이모, 오늘은 순대곱창볶음 칼칼하게요!”

여기저기 주문하는 소리로 떠들썩하다. 순대국밥부터 순대볶음, 순대곱창볶음, 술국 등 순대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순대 타운은 한마디로 역동적이다. 점심시간에 들른 회사원부터 수원 화성을 관광 중인 가족 여행객 등 음식을 기다리는 이들의 달뜬 표정은 보는 이의 침샘까지 자극했다.

어디 이뿐이랴. 뜨거운 순대 국물 한 입 삼킨 뒤 절로 터져 나오는 ‘캬~’ 소리부터 다음 손님을 위해 ‘달그락달그락’ 설거지하는 소리, 얼큰한 순대국밥과 함께 ‘찬~’ 하고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 등 담백하면서 쫄깃한 순대 맛도 맛이지만 시끌벅적한 이 소리 또한 오감을 자극했다.

그렇다고 지동시장에 순대만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화성 성곽과 지동시장의 사이 고즈넉한 길목에는 새빨간 고추 가게들이 포진해 있고, 미나리광시장과 이웃한 길에는 참기름·들기름 가게가 즐비하다. 그리고 시장 초입에서는 펄떡이는 생선들로 가득한 수산물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이쯤 되니 지동시장이 ‘먹거리 시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

수원 화성을 본떠 만든 지동시장만의 힘이라고 할까. 이 문만 통과하면 마치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분명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음에도 추억을 소환하는 지동시장의 힘은 세다. 어머니의 대를 이어 순대 가게를 운영하는 민은기 사장 또한 지동시장은 서민의 애환이 담긴 곳이자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곳이라고 했다.

“102세,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순대국밥을 드시러 오는 어르신이 계셨어요. 팔순 잔치 날에도 혼자 순대국밥을 드시러 오셨다가 자식들이 모시고 가셨죠(웃음). 어르신은 옛 생각이 들 때마다 이곳에 오셨어요. 순대국밥을 드시면서 옛 정을, 옛 일을 떠올리는 게 좋으셨던 거죠.”

오랜 역사를 품은 지동시장에는 정이 넘친다. 생선 한 마리 덤으로 주는 인심은 물론 오랜 친구가 돼 안부를 묻는 따뜻함도 있다. 식도락 천국 지동시장은 밤이 되면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래서일까. 기분까지 달뜬다. 오래된 지기와 한잔의 소주를 기울이며 옛 추억을 논하는 어르신부터 고단한 젊음을 이겨내기 위해 고민하는 청년들, 식도락을 즐기며 행복을 나누는 연인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누는 곳.

그래서일까? 지동시장에 한 번도 가지 않은 이는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거나 허한 마음에 온기를 더하고 싶다면 지금 지동시장으로 향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전통시장에서 만난 예술 ‘아트포라’|

지동시장 건물 2층에는 예술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이름하여 아트포라. 재래시장 활성화와 문화예술 창작에 힘을 쏟기 위해 입주한 신진 예술가들은 작품을 선보이기도 하고 때론 프리마켓을 열어 제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전통시장과 예술의 만남이 궁금하다면 지시장 2층 아트포라를 방문해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