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꿈
대식이 대학에 근무한 지도 어언 30년, 이제는 중견 교수가 되어 어디에 가더라도 예우를 받는 지식인으로 자리 잡았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였지만 논문도 의무적인 발표만 했고, 최근 들어 종합평가 항목으로 추가된 봉사 활동은 대학교수라는 자만심 때문에 소홀히 했다. 그런 그를 주위에서 탐탁지 않은 눈으로 봤지만 안하무인격인 그는 ‘대학교수가 실력만 있으면 됐지 무슨 봉사활동이냐’라며 참여하지 않았다. 심지어 학생들에게는 날라리 교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불리게 된 이유는 그가 학교 엠티에서 현란하게 춤을 추고, 유행가를 음담패설에 가까운 가사로 개사해서 노래를 불렀기 때문 이었다. 그런데다 귀부인 마냥 무게가 나가는 금목걸이와 금팔찌, 금시계 등 온갖 요란한 장식을 하고 다녀 빈축을 사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부인이 의상실을 운영해 모은 돈으로 고급 외제차를 구입해 차 외장에 온갖 치장을 해서 비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래도 부인에게는 학교에서 제일 인정받는 교수라고 으스댔고, 이번 창립 40십 주년 행사에는 장기근속과 모범 교직원으로 표창을 받을 거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그의 말에 아내는 교수로서 품위를 지켜야 한다며 고급 양복을 사줬지만 그는 여전히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그러면서 요즘 신세대 학생들은 자유분방한 것을 좋아해 격식을 차리지 않는 자신이 학교에서 최고의 인기 교수라며 아내에게 말했다. 그의 기이한 행동과 복장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대학교수다’, ‘사채업자다’, ‘양아치 같다’는 말을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교수 평가에 있어 여러 형태의 민원이 제기됐지만, 그 상황이 딱히 학생들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라 문제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몇 차례 주의를 주고 품위 유지를 하라고 했지만 그는 유명 대학 출신에다 외국 유학파이기도 했고, 우수한 논문을 발표해 학교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공부 잘하는 말썽쟁이와 같았다.
드디어 창립 40십 주년 행사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대식은 내심 이번 행사에 표창장을 받고 격려금도 받지 않을까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창립 30주년 행사 때도 근속 30년 된 교수에게 격려금 500만원을 준 적이 있어 이번에는 1,000만 원 정도는 주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번엔 그 돈으로 한 단계 높은 고급차를 사야겠다는 상상을했다. 대식은 아내에게도 미리 자랑을 하고 차가 좋아야 학생들에게 인기가 더 높아진다며 다음 격려금을 탈때는 꼭 멋있는 선물을 사주겠다고 손가락을 걸었다. 오후 수업을 끝내고 퇴근을 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총장비서실이었다. 그럼 그렇지 무슨일이냐고 물으니 내일 아침 수업이 없는 시간에 총장님이 뵙자는 전갈이었다. 야호! 대식은 소리를 질렀다. 대식은 얼른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 예감이 맞는거라고, 내일 아침에 총장이 격려금을 줄거라며 오늘 친구들을 만나 자랑하고 술 한잔 사고 갈테니 기다리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식의 말을 들은 아내는 역시 당신은 능력 있는 사람이라며 추켜세웠다. 대식은 몇몇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거나하게 한 잔 쏠테니 좋은 술집이 있으면 안내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식인 능력이 있어. 장기근속에다 실력 있는 교수라 자타가 공인하는 거야.”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렇게 인기가 좋으면 총장도 하고 교육부 장관도 해야 하는 게 아냐.”
친구들이 그렇게 말했지만 대식은 거드름을 피웠다. “아냐. 교수는 학문으로 말하는 거야. 교육행정은 머리가 아파. 행동이 자유롭지도 못해. 그 정도야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
“대식인 우리들의 보배야.” 친구들은 영문도 모르고 그저 술에취해 대식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이튿날 아침. 대식은 모처럼 아내의 강권에 의해 양복을 차려입고 총장실 문을 두드렸다. 가슴이 뿌듯하기도 했지만 긴장이 됐다. 대식은 양복을 여미고 다소곳이 손 을 모으고 자리에 앉았다. 총장은 힐끗 대식을 쳐다보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오늘은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었군요.”
“네 그럼 총장님이 부르시는데 제가 어찌 감히….” 대식은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아부를 떨었다.
“요즘 대학정책이 바뀌어 교수평가가 달라졌다는 건 아시죠.”
“네 네.”
대식은 얼결에 대답했다. 얼마 전부터 평가 제도가 달라져 봉사도 하고 평가 규정이 바뀌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동안 대학 발전을 위해 수고하셨어요.”
대식은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겸손을 떨어야 했다. “제가 뭘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어쨌든 그동안 고생 많이 했습니다.”
총장은 겸연쩍은 얼굴로 대식을 바라봤다. 그리고 서랍을 열더니 봉투를 꺼냈다. 그렇지. 대식은 어린아이처럼 팔을 번쩍 들려다 말고 꾹 참았다. 어차피 주는 거 기분좋게 주지. 인상을 쓸게 뭐야 대식은 얼른 두 손을 내밀어 공손히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잘 가시오.”
총장실을 나오며 대식은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대식은 봉투를 뜯어볼까 잠시 망설이다가 속주머니에 넣었다. 그래도 아내와 함께 봐야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대식은 아내에게 일찍 들어오라며 전화를 했다. 아내도 기뻐하며 일찍 가게를 접고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주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집에서 만난 아내는 반갑게 그를 맞았다.
“우리 남편 최고!”
대식은 속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아내에게 내밀었다. “어머, 정말 떨려.” 대식은 여유만만한 얼굴로 어깨에 힘을 주었다. 드디어 아내가 봉투를 뜯었다 아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아니, 왜 그래? 너무 큰돈이야?”
대식의 말에 아내는 대답도 않고 대식을 노려봤다. “아니, 뭐야? 왜 그래?”
대식의 말에 대꾸도 않고 아내가 종이쪽지를 내동댕이 쳤다.
대식은 얼른 쪽지를 집어 들었다.
“이번 교수 재임용 평가에서 탈락됐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별빛 속에 검은 분말들이 허우적거리며 허공을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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