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대학에 입학할 당시, 가장 해 보고 싶었던 건 친구들과의 여행이었다. 배낭을 둘러메고 낯선 길을 무작정 걸어 보는 것, 그러다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며 뜻밖의 동행을 자처하는 이른바 ‘히치하이크’라는 것도 한번쯤 해 보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길에서 만난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어 간다는 영화 속 장면이 낭만적으로만 다가오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낯선 차를 탄다는 것도, 우연히 만난 누군가를 태워 주는 것도 망설여진다. 얼마나 험한 세상인가. 그런데 얼마 전 그 히치하이크가 다시 떠올라 흐뭇했던 일이 있었다. 그 날 따라 아침 일찍 일이 생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얼마쯤 갔을까. 한적한 국도변에서 홀로 짐을 들고 가시는 할머니 한 분을 발견했다.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길인데…. 혹시나 싶어 창문을 열고 어디까지 가시냐고 여쭤 봤더니,근처 5일장에 간다는 거였다.
“할머니, 타세요. 제가 그쪽 방향으로 가거든요.”
“그래도 되나….”
처음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몇 번 더 권하자 결국 차에 오르셨다. 할머니는 인근에서 농작물을 손수 키워 장터에 팔러 가는 길이었는데, 40분마다 오는 버스를 놓쳐 걸어가던 중이었단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았던 나는, 장날에 대한 기억이 많다. 그래선지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축제 같았던 예전 장날과 요즘 장날 이야기, 장터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과 할머니가 알고 계신 요리노하우 등 마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쉴 새 없이 얘기하며 10여 분을 달렸다.
차에서 내릴 때 할머니는 덕분에 편하게 왔다고, 별거 아니지만 먹으라며 직접 키웠다는 오이와 호박을 건네셨다. 팔아야 할 물건임을 뻔히 알기에 절대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던지듯 두고 내리셨다.
“잘 먹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분주히 걸어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는 내내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