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출판단지는 사시사철 언제든 아름다운 곳입니다. 멋들어진 각각의 건축이 파주의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 하나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곳의 한가운데에 지혜의 숲이 있습니다. 처음 이곳을 찾아갔을 때 입이 떡 벌어지던 그 놀라움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마치 거대한 책의 바다를 마주하는 듯 압도적인 광경을 선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숲으로 들어가는 초입은 모던한 이미지가 돋보이는 건축 디자인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직선의 미려함이 두드러지는 기둥과 기둥 사이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비로소 책으로 이루어진 숲이 펼쳐집니다. 나무로 짠 높디높은 책장에 가득 꽂혀 있는 책들. 이곳을 숲이라고 비유한다면 저 책장은 분명 높다란 자작나무여야 할 것입니다. 길쭉한 몸체에 단단한 책을 가득 담고서 아무리 차갑고 거친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으며 제 역할을 다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파주출판단지는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곳에 불과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다양한 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찾아가는 이가 많았지만, 실망하는 경우도 그만큼 많았죠. 변화는 2011년 즈음부터였습니다. 출판단지 내에서 ‘파주 북소리 축제’와 ‘어린이 책잔치’ 같은 행사가 열리면서 책 좋아하는 이들의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2014년 지혜의 숲이 등장하면서 파주출판단지라는 지역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화룡점정이 이루어집니다. 가치 있는 책을 한데 모아 보존·보호하고 관리하며 함께 보는 공동의 서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당초의 취지였다고 합니다. 출판도시문화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조성했는데, 지금도 재단의 자체 재원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이 마련되자 각계의 학자·지식인·연구소에서 도서를 기증해 왔습니다. 생을 온전히 하나의 분야에 헌신한 이의 책장이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해도 무방할 텐데, 이는 큰 의미를 가집니다.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의 삶을 그가 평생 읽고 연찬한 책을 한눈에 꿰어 봄으로써 이해하는 공간이 되니까 말이죠. 여기에 기증한 책은 분야도 다양해서 문학·역사·철학·사회과학·자연과학·예술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합니다.
이 커다란 숲은 규모가 규모인지라 공간을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지식의 숲1’은 학자나 지식인, 연구소에서 기증받은 도서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지식의 숲2’는 출판사에서 기증한 도서를 모아 두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출판사의 책은 모두 이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도서를 분야별로 분류하는 일반 도서관과 달리 출판사별로 구분 짓고 있어서 출판과 출판사의 역사를 더듬어 살피기에도 좋습니다. 어린이 책만 모아 둔 코너도 여기서 인기가 아주 높습
니다. ‘지혜의 숲3’은 앞의 두 곳과 달리 조금은 한적한 분위기입니다. 이곳은 출판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의 로비로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출판사나 유통사·박물관·미술관에서 기증한 도서로 꽉 채워 놓았습니다.
이처럼 방대한 지식의 숲을 헤매고 다니는 것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이곳을 찾아올 때마다 어떤 책이 나의 눈에 들어올지 설레는 마음으로 발길을 내딛습니다. 커피를 한 잔 시켜 곁에 두고 책을 읽는 동안 일상에 치여 들떠 있던 마음이 차분하게 내려앉습니다. 여기는 다른 어떤 곳보다도 ‘책의 힘’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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