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으로 빚은 왕실의 품격 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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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으로 빚은 왕실의 품격
옥장

경기무형문화재 제18호
김영희 옥장 보유자

과거 임금의 몸을 일컬을 때는 ‘옥체’라는 표현을 썼다. 당시 왕을 상징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옥을 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왕의 도장인 옥보를 비롯해 머리에 쓰는 면류관과 허리에 두르는 옥대 등 왕실의 품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옥을 사용했다. 하지만 단단한 옥으로 그 아름다운 빛깔과 형태를 내려면 당대 최고의 장인들도 심혈을 기울여야만 했다.

글 강나은•사진 김희진

옥을 깎아 만들어 내는 왕실공예

옥장이란 옥석류와 보패류, 금과 은을 가공해 왕실의 기물류 및 각종 장식류를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왕실에 관련된 기물이나 장신구에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모두 옥이 관련돼 있어요. 하지만 옥만을 사용하지는 않았죠. 여기에 다양한 보석이 더해지고, 금속이 세공돼야 더욱 아름다운 형태로 만들어져요.”

벽봉 김영희 선생은 1970년 백옥사 김재환 선생의 문하생으로 입문한 뒤 지금까지 근 반세기 동안 한길만 걸어왔다. 흔히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천공(天工)이 라고 부른다. 하늘이 내린 장인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과정은 예술보다는 노동에 가깝다.

“공예는 대체적으로 노동집약적이에요. 옥이라는 소재도 다른 분야와 마찬 가지죠. 옥은 경도가 4.5에서 6 정도입 니다. 엄청 단단한 소재예요. 그렇게 강한 것을 깎아 내고, 다듬어서 원하는 모양을 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이렇게 힘든 노동을 지속하면서도 고집을 놓지 않는 것 또한 천공이 되기 위한 요건이다. 옥이라는 소재를 금속과 결합해 작품을 만들어 내면서 지치고, 힘들고, 꾀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천공이라면 이러한 당연함을 거부해야만 한다.

국내 유일 왕실 장식공예 장인의 자부심

김영희 선생은 수많은 전시와 활동을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유물을 복원하고 복제하면서 가장 큰 자부심을 느낀다. 그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왕실 장식공예품 을 작업해 왔기에 중요한 전시에는 우리 나라 대표로 참여하곤 한다.

“유물을 복원해서 국립박물관에 전시하거나 외국에 선보이기도 하는데요. 해외에 있는 문화재를 발굴해서 국내로 가져오는 역할을 하는 국외 소재 문화재재단이 있습니다. 문화재청과 국외 소재 문화 재재단, 조폐공사 그리고 우리 같은 장인들이 모여서 문화재를 복원해 내고, 전시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힘은 들지만, 자랑스럽고 보람도 크죠.”

한편 김영희 선생은 궁중 장신구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파주시 헤이리마을에 벽봉한국장신구박물관을 열었으며, 아들인 김청운 이수자가 이 기술을 이어 받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아내인 신옥순 씨도 서울 무형문화재 제6호 매듭장 이 수자로, 온 가족이 함께 가족 전을 열어 보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다.

“지금까지는 복원과 복제가 중심이 됐지 만, 앞으로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져 50년, 100년 후에도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공예가 이어지되 현대적인 감각으로 응용이 결합된 디자인도 필요해요. 미래를 위해서 이 기술을 잘 전승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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