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안정화 열쇠는 쌀 수급 안정화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경제학박사)
최근 쌀값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15일자 산지 쌀값이 80kg 기준으로 131,808원까지 떨어졌다. 우리가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20kg 단위로 환산하면 3만 2,952원에 불과하다. 물론 원료 가격이기 때문에 우리가 매장에서 구매하는 쌀 소매가격은 이보다 조금 높다. 그렇지만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10월 25일자 햅쌀 20kg 가격도 37,576원으로 산지 쌀값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다. 20kg의 쌀은 평균적인 성인 쌀 소비량의 4개월분에 육박하지만, 지금의 시세로는 라면 마흔 개 남짓의 가치밖에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쌀값이 떨어져도 직불제로 보상해 주기 때문에 쌀 농가는 걱정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쌀 직불제로 가격 하락분의 상당 부분이 보전되는 것은 사실이다. 직불제의 경우 보장 목표가격(80kg당 188,000 원)과 실제 시장가격의 차이 중 85%까지를 정부 재정으로 보전해주고 있으며, 작년의 경우 정부는 7,257억 원을 지원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와 같이 쌀값이 낮으면서도 앞으로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쌀 농가로부터 쌀을 수매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도 쌀 수매량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쌀 농가는 쌀을 판매할 판로를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하는데, 고령 영세농이 대부분인 쌀 농가 입장에서는 이 또한 큰 부담이다.
무엇보다 쌀 직불금을 무한정 지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WTO 협정상 우리나라 정부는 농산물의 가격보전 등을 위해 총 1조 4,900억 원을 한도로 지원할 수 있다. 그런데 산지 쌀값이 130,411원 수준까지 하락할 경우 쌀 가격보전을 위해 이 한도를 모두 사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 가격 이하로 산지 쌀값이 하락하면 정부는 지원하고 싶어도 더 이상 지원할 수 없게 되는 구조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또 한편으로는 지역별 쌀값 차이가 2배 이상 나는 현실에서 보장 목표가격을 전국 공통으로 설정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쌀값이 낮은 지역에서는 정부의 지원으로 인한 효과가 충분하지 않은 곳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브랜드 이미지가 잘 구축돼 있는 경기도는 그나마 쌀값 하락의 영향이 덜한 편이지만, 쌀값이 가장 낮은 전라도 지역은 실제 쌀값 하락폭에 비해 낮은 수준의 직불금을 지원받게 되는 문제가 있다.
쌀값 하락의 원인은 수급불균형
그렇다면 쌀값이 왜 이렇게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은 수급불균형 이 구조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절대적인 측면에서 공급이 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년 간(1995~2014 양곡연도) 쌀 공급량은 15%나 줄었다. 문제는 쌀 수요량 감소 폭이 20%로 더 컸다는 점이다. 쌀 공급량 감소분이 수요량 감소분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벼 재배면적이 줄어드는 반면 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인 쌀 단수는 생산기술 발전으로 오히려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쌀 단수는 지난해 10a(1ha의 1/10) 당 542kg 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올해도 작년 수준인 540kg 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소득 증대에 따른 서구식 식습관의 확산으로 육류 및 밀가루 소비가 늘면서 쌀 수요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 10년간 80.7kg에서 62.9kg으로 무려 18kg 이상 감소했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고지방 다이어트가 인기를 끌고, 탄수화물이 비만·당뇨병 등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현상 또한 쌀 수급에 부정적인 요인으
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수급불균형이 지속되면서 쌀 재고도 올해 말에는 190만 톤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한 해 쌀 수요량의 절반에 가까운 막대한 물량이다. 이 정도 규모의 쌀 재고를 1년간 보관한다고 가정했을 때 5,833억 원 (10만 톤 당 307억 원)의 비용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정부 재정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욱 염려되는 것은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는 점이다. 주로 10월부터 햅쌀이 나오기 시작해서 연말 까지 집중적으로 출하되기 때문에 통상 산지 쌀값은 10월 초에 반등했다가 그 이후 하락세가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만약 통상적인 패턴이 이번에도 적용된다면 산지 쌀값은 20년 만에 13만 원대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물론 쌀값이 떨어지면 소비자에게는 식료품비가 절약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를 기준으로 하면 가구의 소비 품목 중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1% 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전체 농가 중 60%에 가까운 농가가 쌀을 생산하고 있고, 농업 총수입에서 쌀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하락 추세이긴 하나 19% 수준을 차지한다. 다시 말해 쌀은 여전히 농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소득원인 것이다.
쌀값 안정화를 위한 정부 방침
올해 정부는 예년보다 빠른 10월 6일에 수확기 수급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올해 생산량 중 신곡 수요량 이상의 초과 물량을 정부가 연내에 매입해 시장에서 격리함으로써 쌀값 하락을 멈추게 하겠다는 것이 대책의 골자다. 통계청이 발표한 예상 생산량이 420만 톤 수준이고 예상 신곡 수요량이 390만 톤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시장격리 물량은 30만 톤 전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정부의 대책 발표 이후에도 산지 쌀값이 1.7% 하락했다는 사실이다. 다만, 최근 5년간 같은 기간 (10월 5~15일)의 가격 감소율이 2.9%였기 때문에 그보다는 하락폭이 작았다는 데서 그나마 희망을 가져볼 수있을 듯하다. 그러나 곧이어 발표된 시장격리 물량이 당
초 예상했던 30만 톤보다 다소 적은 25만 톤이라는 점은 불안 요소다.
정부는 실제 수확량이 발표되는 11월 중순에 최종적으로 격리 물량을 확정한다는 방침인데, 당초 약속했던 것처럼 신곡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에 대해서는 전량 격리해 쌀값 하락세를 멈추게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중장기적으로는 쌀 가공산업 육성 등을 통해 수요 감소세를 완화시키는 한편, 공급 측면에서는 국내 생산량이 적은 사료작물 등을 중심으로 타작물 전환을 촉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나마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급하고 있는 쌀이 어쩌다 이렇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는지 안타까운 심정이다. 올해 쌀값 문제도 시급하게 해결해야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쌀 수급이 안정화될 수 있도록 정부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