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 연꽃 만나고 가는 갯바람같이

시흥시, 연꽃 만나고 가는 갯바람같이

1797년 정조는 관내 선비만을 대상으로 과거를 실시했습니다. 이때 시험문제가 ‘중국 남경에 갔던 사신이 전당홍이라는 종자를 가져와 심으니, 읍의 별호를 연성(蓮城)이라 했다’라고 합니다. 과거 시흥시(始興市)가 얼마나 연꽃으로 유명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시작은 관곡지였습니다. 세조 때 학자였던 강희맹은 1463년 명나라에 갔다가, 전당홍이라는 새로운 품종의 연꽃을 들여왔습니다. 강희맹이 ‘꽃은 희고 끝부분에 오직 담홍을 띠고 있다’던 전당홍을 처음 심었던 곳이 관곡지입니다.

 

전당홍 연꽃’ 시배지

1960년대 오이도에서 신석기시대 패총과 집자리가 확인됐습니다. 2004년 능곡동에서도 집자리 24기가 발견됐습니다. 약 1만 년 전부터 이 땅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고구려 때는 ‘장항구현’과 ‘매소홀현’이라고불렸고, 1914년에 옛 시흥군과 안산군 · 과천군이 병합돼 시흥군으로 통합 · 확장됐습니다. 이후 안양 · 과천 · 안산 등이 분리되고, 부천 일부가 편입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 면적의 시흥이 됐습니다.

 

바다와 갯벌이 아름다운 도시

바다와 갯벌은 시흥을 상징하는 풍경입니다. 인천 소래포구에서 월곶포구와 갯골생태공원, 배곧, 옥구도, 오이도 등이 서해를 따라 이어집니다. 조선시대때 월곶포구는 월곶 혹은 달월이라 불렸고, 오이도는 ‘오질이도’ ‘오질애도’ 등으로 불렸습니다. 갯골생태공원은 경기도 유일의 내만 갯벌인 시흥갯벌 안에 있는 습지보호지역입니다. 시흥갯벌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염전으로 개발돼 1996년까지 소금을 생산했습니다.

 

경기 중서부를 잇는 곳

인천시 남동구와 시흥시의 경계에 소래산이 있습니다. 대부분 면적이 시흥에 속해 있습니다. ‘대동지지’에 ‘고려 고종 43년에 대부도의 남양별초가 밤에 나가 인주 경계의 소래산 아래서 몽골병 100여 명을 들이쳤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는 지금의 시흥과 인천, 부천을 연결하는 중요 지점이 시흥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이 소래산 기슭에 소산서원과 하우명 효자정각,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등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습니다.

 

연꽃 피고 바닷새 우는 고장, 시흥

• 시흥연꽃테마파크

시흥에서 관곡지가 갖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곳으로, 관곡지 주변 20㏊의 논에 조성했습니다. 연꽃은 매년 7월 중순부터 8월 하순까지 피며 전당홍과 백련, 홍련 등 다양한 연꽃이 자랍니다.

•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소래산 자연 암벽에 얇은 선으로 새긴 불상으로 높이 15m, 발톱 길이 15cm, 귀 1.27m에 달합니다. 암벽의 풍화가 심해 형상이 흐릿하지만 회화적 표현이 뛰어나 2001년 보물 제1324호로 지정됐습니다.

• 소산서원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 선생을 기리는 곳으로, 원내에 묘소가 함께 있습니다. 입구에 하연의 셋째 아들인 하우명의 효행을 기리는 정각도 있습니다. 시흥시 향토유적 제11호로 지정돼 보호받는 정각입니다.

• 오이도

원래 섬이었으나 매립돼 육지와 이어졌습니다. ‘세종실록’에 안산군에 속한 섬으로 ‘오질이도’가 나오고 ‘지리지’에 봉화가 있는 곳으로 ‘오질애도’가 기록돼 있습니다. 이곳의 낙조가 ‘시흥8경’의 하나로 손꼽힙니다.

• 갯골생태공원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소래염전 지역으로, 당시 생산된 소금은 대부분 수인선과 경부선 열차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됐습니다. 소금생산이 중단된 후 2012년 국가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으며, 매년 이곳에서 ‘시흥갯골축제’가 열립니다.

• 월곶포구

육지에서 바다로 반달처럼 튀어 나와 있어 붙은 이름으로, 이곳에서는 만조 전후 어선이 드나들 때마다 수시로 경매가 이루어집니다. 갯골을 사이에 두고 인천 소래포구가 있고, 한때는 이 갯골 위로 수인선 협궤열차가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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