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어지럼증으로 작은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셔서 병문안을 갔던 며칠 전이었다.
작은어머니 바로 옆 병상에는 80세를 약간 넘긴 듯한 한 할머니가 계셨는데 날더러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시계 있소? 지금 9시 안됐소?”라고 묻는 것이다. “예 할머니. 7시 10분입니다”라고 말씀드렸지만 할머니는 귀가 안 좋은지 자꾸 9시가 안됐냐고 반복해서 묻는다. 그러고는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 눈으로 병실 문 쪽만 바라보셨다. 보다 못했는지 작은어머니 반대편의 또 다른 노인이 “그 할머니 귀먹었는데 자기 아들 기다리는 거여” 라고 알려 주셨다. 약 3주 째 같은 병실을 쓴 다른 분은 지난 3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할머니 아들이 저녁 8시 30분에서 9시 사이에 병원에 와서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을 시켰으면 이곳에서 꾸준히 치료를 해야지 왜 저녁마 다 모시고 갈까? 그 이유는 할머니가 병원이 불편하다고 하시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낮에는 치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계시지만, 밤중에는 이 침대 생활이라는 게 불편해서 집안의 평평한 안방으로 모시려고 그러는 것 같다”며 다른 할머니가 그 아들이란 사람의 효심을 칭찬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8시 50분쯤 되자 정말로 50세 초반쯤의 순박해 보이는 남자 한 분 이 가볍게 인사를 하며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어머니 오늘은 어떠세요?”라며 할머니를 번쩍 업고 나갔다. 할머니와 아드님이 나가자 반대편 노인이 말을 이었다. “사실 저 아들이 엄청난 효자여.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낮에 병실에 들러 할머니 몸을 씻기고 또 음식을 먹여주고 저녁때면 할머니가 불편 하시다고 저렇게 등에 업어 모셔 간다니깐.다음날 아침에 또 모셔 오고…, 그러는 걸 보니 부러워 보이더구만.”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불효자가 효자를 찾아가 효자가 되는 방법을 묻던 구전설화가 생각났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아주 소문난 효자와 아주 못된 불효자가 살았다. 하루는 이 못된 불효자가 효자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효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이에 효자로소 문난 사람은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버지가 일어나기 전 아버지의 옷을 입고 있다가 아버지께서 일어나시면 제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입혀 드립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옷이 따뜻하여 추운 겨울에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좋아 하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효도라는 개념에 딱 부러지게 ‘여기서부터’라는 기준은 없다. 그저 부모를 웃게 해 드리면 그게 효자이고 효도 아닐까 싶다.
평생 구들장 위에서 주무시며 살았을 어머니가 침대를 불편하게 느끼자 등에 번쩍 업고 병원문을 나서던 그 50대 남자분의 어깨가 한없이 넓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