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용문산에 의지하고 호수를 베개 베었으니

조선 초기의 문신 이적은 양평을 일러 “왼쪽으로는 용문산에 의지하고오른쪽으론 호수를 베개 베었다”고 읊었습니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양평이 “용문에 의지하고 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용문산의 산체가 그만큼 웅대했음을 가리킵니다. 용문산을 남북으로 에워싸고 북한강과 남한강이 흐릅니다. 두 물길이 만나 한강을 이루는 두물머리 또한 절경입니다. 이런 수려한 자연경관 덕에 양평은 예부터 회화와 시문 등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

삼국시대 이 지역은 백제에 속했으나, 475년 고구려의 양근에 속했습니다. 551년 신라가 지금의 충주와 양평 유역까지 세력을 넓혔을 때는 신라 땅이 돼 빈양이라 불렸고, 고려 공민왕 때 양근으로 개칭됐습니다, 1908년 ‘양’근과 지‘평’을 합쳐 양평이라 불렸습니다.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활약했고, 6·25전쟁 당시에도 중부전선의 중요한 교통 요충지로 기능했습니다.

천년 고목이 품은 신비로운 이야기

용문사에는 천왕목이라 불리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고도 하고,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면서 버린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 자랐다고도 합니다. 거듭되는 병화와 전란 속에서도 1,200여 년을 살아남아 ‘천왕목’으로 불리는데, 조선 세종 때는 정3품보다 높은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받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나라에 변고가 일어날 조짐을 먼저 내다보고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신비로운 나무입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자리

양평의 두물머리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합쳐지는 곳을 말합니다. 남양주와 광주, 양평을 잇는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수운교통이 중심일 때 이곳에는 4~5개의 주막과 마방이 있었습니다. 이후 1973년 팔당댐이 들어서면서 나루의 기능은 상실되지만, 물안개 가득 피어오르는 강변 여행지로 사람들의 왕래는 여전히 잦습니다.


공장 하나 없는 친환경 생태도시, 양평

 

[두물머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강가에 정박한 황포돛배와 수령 400년 된 느티나무 등이 볼 만합니다. 봄가을로는 물안개가 곱게 피고, 여름에는 연꽃으로 주위가 다 환해집니다.

[용문사]

649년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892년 도선국사가 중창한 천년고찰입니다. 1958년 재건해 오늘에 이른 곳으로, 경내에는 보물 제531호로 지정된 정지국사 부도와 부도비 등이 있습니다.

[세미원]

수생식물을 이용한 자연정화공원으로, ‘물과 꽃의 정원’으로 불립니다. 수생정화 능력이 뛰어난 연꽃을 주로 식재해 여름이 제철이지만, 세계수련관에서는 일년 내 아름다운 수련을 볼 수 있습니다.

[구둔역]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에 있는 폐역으로, 2006년 12월 등록문화재 제296호로 지정됐습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촬영지로, 작고 아담한데다 동화 속에 나오는 역처럼 예뻐 연인들의 방문이 잦습니다.

[지평양조장]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으로 1925년에 지어졌습니다. 한옥에 일본식 건축 양식이 가미된 건물로, 6·25전쟁 당시에는 프랑스군의 사령부로도 사용됐습니다. 2014년 등록문화재 제594호로 지정됐습니다.

[소나기마을]

소설 <소나기>의 배경을 재현한 곳으로 황순원 문학관과 소나기광장, 소설 <소나기>의 배경을 재현한 체험장 등이 있습니다. 소나기광장에서는 겨울철을 제외하고 매 시간 네 개의 물기둥을 통해 인공 소나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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