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백암5일장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백암5일장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고 햇살이 비친 백암5일장. 맑게 갠 하늘 아래 펼쳐진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등의 색색의 천막들이 온 시장을 물들였다. 잠시 비를 피하고 다시 시장 구경에 나선 손님과 상인이 흥정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백암5일장은 이름에서도 짐작 가듯 1일, 6일마다 열리는 5일장이다. 놀라운 사실은 무려 조선 시대 중기부터 그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지금은 시골의 작은 전통시장이지만, 한때 백암5일장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우시장이었다. 명성이 얼마나 자자하면 저 멀리 경북 영주나 상주에서도 상인들이 소를 팔기 위
해 모여든 곳이기도 하다. 25년째 백암5일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문종석 씨는 어릴 적 본 우시장의 모습을 회상했다.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온 백암5일장은 소 반, 사람 반이었어요. 당시 상인들은 소를 차로 싣고 오는 게 아니라 소를 몰며 걸어왔어요. 소를 팔기 위해 시장으로 모여드는 상인들의 행렬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5리 밖에서 오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지금 저희가 장사하고 있는 이 공터 끝에서 끝까지 소와 사람으로 북적북적했으니, 규모가 짐작가시죠? 그땐 시장 바닥이 모래여서 장에 오면 늘 누런 모래 먼지를 뒤집어써야 했어요. 그래도 재미있었죠(웃음).”

 

 
 
 
 
 
 

백암5일장의 별미, 백암순대 맛보기

우시장이 활성화되니 과일, 생선, 농산물, 의류, 가축 등을 파는 상인들이 자연스레모여들었고, 시장의 몸집 또한 커졌다. 용인의 대표적인 향토음식 백암순대가 조선시대를 지나 지금까지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백암5일장을 찾는 이들이 제일 즐겨 찾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백암순대는 어디서나 맛볼 수 있지만, 옛날에는 주로 백암5일장 인근에서나 맛볼 수 있는 별미였다. 백암순대는 장날 물건을 팔러 온 사람, 사러 온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준 음식이었다. 지금도 시장 주변에는 순대국밥 가게가 즐비하다. 장날인 만큼 순대 국밥집은 이미 만원으로 시끌벅적한 모습이다. “이 집 순대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먹어 줘야 해”라며 친구들과 순대를 안주 삼아 반주를 건네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허기를 자극했다.

 
 
 
 
 
 
 
 
 

씹을수록 찰진 식감에 한번 놀라고 담백한 맛에 또 한 번 놀라게 되는 백암순대. 한차례 비가 쏟아진 뒤 맛보는 뜨끈뜨끈한 국물의 순대국밥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잘 익은 배추김치와 무김치는 순대국밥의 맛을 배가시켰다. 비록 지금은 사라졌지만, 20여 년 전 백암5일장에는 막걸리 양조장이 있었는데, 그 맛이 어찌나 좋은지 백암순대만큼이나 명성이 자자했다는 것이 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다.

 

 

 

 
 
 

정이 있어 마음 따뜻해지는 백암5일장

영원히 번성할 것 같았던 백암5일장은 우시장이 사라지면서 서서히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째 이곳에서 장사해온 상인들은 한결같이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한다. 수세미 등 주방용품을 파는 최정자 상인은 “오랜 시간 이곳에 있으면서 단골손님이랑 정 많이 들었지. 장날이면 꼬박꼬박 나오니 손님들이 물건 사러 와서는 음료수도 주고, 더덕도 주고 해. 어디 받기만 할 수 있나. 나도 때수건 하나 더 끼워줘(웃음). 이제는 안 보이면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니까”라며 단골손님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실 집 앞의 마트를 두고 시장까지 일부러 오는 손님들 또한 오랜 시간 얼굴을 마주하며 쌓은 정 때문이리라.

박종기 상인회장은 이제는 가까운 사람이 된 손님들에게 어찌 좋지 않은 물건을 내놓을 수 있겠냐며 백암5일장 물건의 품질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시장을 한 번 둘러보시면 알겠지만, 물건들이 참 싱싱합니다. 아무래도 장날에 맞춰 물건을 사 오는 만큼 품질이 좋아요. 장날 아침 농작물을 수확해 파는 분들도 많고요”라며 웃어 보인다. 그리고 그는 백암5일장을 대표하는 상인으로 그들이 하루빨리 법적 보호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 또한 잊지 않고 전했다.

작은 것 하나를 사도 미소를 건네는 상인들의 표정에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백암5일장은 소박함이 매력이다. 농기구를 비롯해 바닥에 가지런히 정리된 모습부터, 켜켜이 쌓여 있는채, 붉은색 바구니들에 담긴 콩, 잘 말린 고추 등 형형색색의 파라솔 아래의 물건들을 구경하며 시장을 누비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느끼는 소박함과 따뜻함이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고나 할까. 햇살 좋은 가을날 백암5일장으로 떠나보자.

 

 

 

 


백암5일장의 백미 ‘백중 문화제’ 즐기기

옛날에는 절기 중의 하나인 백중날이 되면 농가에서는 머슴을 하루 쉬게 하고 돈을 주며 장에서 술도 마시고 음식도 먹고 하루 쉬게 했다. 이 풍습을 재현해 낸 백중 문화제가 일 년에 한 번 백암5일장에서 열린다.
백암순대 만들기, 떡 메치기 등 다양한 즐길 거리로 가득하다.
•위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로 202번길 18
•시장 서는 날 : 매월 1일 · 6일 · 11일, · 16일 · 21일 ·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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