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에는 임진왜란 3대첩지 중 하나인 행주대첩과 관련해 한 전설이 전해집니다. 임진왜란 발발 다음해인 1593년 2월 12일(음력), 당시 전라 감사 권율은 한양을 수복하기 위해 병력을 행주산성에 집결시켰습니다. 왜적은 3만 여 명인데, 모인 병력은 관군과 승병, 백성을 합해 1만 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성 안의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든 덧치마로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부녀자들이 활용했던 덧치마를 ‘행주치마’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한양과 접한 큰 도시
일산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중기 구석기 유물이 발견됐습니다. 적어도 5만년 이전부터 이 땅 위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 땅이었고, 475년부터 고구려 땅, 553년부터 신라 땅이 됐습니다. 1413년에 ‘고봉’현과 ‘덕양’현에서 한 글자씩 따 ‘고양’현이라 불렸고, 1989년 일산지구 개발지원사무소가 설치되면서 신도시 건설사업이 추진됐습니다.
고려의 개성과 조선의 한양 연결로
고양은 예부터 교통의 중심이자 수운의 길목이었습니다. 한강을 끼고 창릉천을 따라 홍지문을 통하면 한양 도성이 나왔고, 한강을 따라 가면 이내 덕양산을 만났습니다. 1394년 태조 이성계가 도성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긴 후, 고양은 자연스레 수도 한양과 옛 도성인 개성을 연결하는 자리에 놓이게 됩니다.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이 다니는 의주로까지 지나게 되면서 사람의 왕래가 잦아지고, 도로 또한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중국 사신들의 한양 입성 관문
1471년 의주로에는 역관 열두 개가 있었습니다. 벽제관이 그 첫 번째 역관이었는데, 중국의 사신들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예의를 갖춰 한양으로 입성하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조선 초기 여러 능에 제사 지내러 가는 국왕이 숙소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규모가 컸다고 전해지지만 6·25전쟁 때 소실돼 지금은 터로만 남아 번성했던 옛 시절을 바람결에 들려줄 뿐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로운 도시, 고양
[일산호수공원]
1996년 개장한 공원으로 100여 종의 야생화와 20만 그루의 수목이 자라고 있습니다. 호수를 따라 8km가량의 산책로가 이어지고, 공원 북쪽에는 2004년 완공된 ‘노래하는 분수대’가 있습니다.
[고양누리길]
고양을 자세하고 풍요롭게 만날 수 있는 걷기 길입니다. 북한산누리길부터 바람누리길까지 14개 코스가 있고, 각 코스마다 연장은 3.7km~15.5km에 이릅니다. 대부분 6~7km 내외입니다.
[서삼릉과 서오릉]
고양에는 8기의 왕릉과 왕비릉이 있습니다. 서오릉에는 창릉·홍릉·경릉·익릉·명릉, 서삼릉에는 희릉·효릉·예릉이 있습니다. 이중 서오릉에는 숙종과 그를 사랑했던 네 여인이 묻혀 있습니다.
[행주산성]
덕양산 정상 중심의 능선을 따라 삼국시대 처음 축조된 토성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장군이 대승했던 곳으로, 전체 둘레는 약 1km에 이릅니다. 행주대첩이 있던 2월 12일을 기려 매년 행주대첩제가 거행됩니다.
[밤가시초가]
정발산 주택단지 안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으로, 1991년 10월 19일 경기도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됐습니다. 똬리집 형태로 경기지방 가옥구조의 변천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자료입니다.
[킨텍스]
미래 전시사업의 메카로 손꼽히는 국제종합전시장입니다. 2005년 4월 29일 개관해, 2년 만에 국내 규모 있는 전시회 7개를 개최했습니다. 국내외 일류 기업들의 마케팅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