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인물은 갔어도 그 자취 남아 묵향 그윽하니

In 경기천년을 담다, 행복경기로(路)

“살아서는 포천에 가야 양반이고 죽어서는 장단 가야 양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포천엔 벼슬을 놓고 자연을 즐기려는 선비들이 많았고 빼어난 인물도 많았습니다. ‘오성과 한음’ 일화로 유명한 오성 이항복과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조를 쓴 양사언,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유응부 등이 그들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학자이면서 항일의병장이었던 최익현도 포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일찍부터 포천 땅은 그들로 묵향 그득했습니다.

물 많은 골( 谷 ), 포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포천은 “본디 고구려의 마홀인데 일명 명지라 하기도 한다. 신라 진흥왕 때에 견성군이라 고쳤으며 경덕왕 때(757년) 청성군으로 바뀌었다. 고려 초기에 포주라 했고, 그 후 포천이라 개칭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 태종 13년(1413)부터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물은 없고 외부로 흘러나가기만 한다”는 뜻의 포천으로 불렸습니다.

동북지방과 한양의 물류 중개지

포천은 예로부터 동북지방으로 통하는 대로였습니다. 지금의 함경도와 강원도 등 동북지역의 물산을 한양으로 넘겨주던 중개지로 소흘면 송우리에 어물, 삼베, 소 등 물류가 모였습니다. 당연히 주막거리, 장터, 역 등이 발달했고 사람들의 왕래도 잦았습니다. 특히 우시장이 발달해 송우리 일대의 순댓국과 이동의 갈비가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6·25전쟁 격전지

고구려의 남진이 본격화되던 4세기 말부터, 고구려와 백제의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후삼국시대에는 궁예와 견훤의 격전지였고, 궁예와 왕건과의 접전도 수차례 있었습니다. 6 · 25전쟁 당시에는 남침의 주요 길목이기도 했습니다. 개전 초부터 1951년 3월까지 2차례 북한군의 점령 하에 있다가, 1951년 3월 24일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완전히 수복됐습니다. 이동면 도평리에 수복기념탑이 있습니다.


물 많고 숲 좋아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는, 포천

[산정호수]

‘산 중에 묻혀 있는 우물 같은 호수’란 뜻으로, 호수의 둘레를 따라 3km 가량의 둘레길이 조성돼 있습니다. 맑고 푸른 호수를 따라 걷다보면 산정랜드, 김일성 별장, 조각작품, 궁예 조형물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포천허브아일랜드]

340여 종류의 허브를 보고 만질 수 있는 곳으로, 밤이면 불빛동화축제가 열립니다. 수백만 개의 LED 전구로 농장 내 모든 건물과 시설물, 정원을 휘감아 밤 풍경이 휘황찬란합니다.

[비둘기낭]

‘폭포 뒤 동굴에서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서식했다’ 해 ‘비둘기낭’이라 불립니다. 현무암이 침식돼 생긴 폭포와 코발트빛 소가 아름다운 곳으로, 송중기 주연의 영화 <늑대소년>이 이곳에서 촬영됐습니다.

[포천아트밸리]

원래 폐석장이었던 곳을 포천시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입니다. 드라마 <화유기> 촬영지로, 화강암을 채석하며 파들어갔던 웅덩이에 샘물과 빗물이 유입되면서 생긴 천주호가 명물입니다.

[한가원]

한과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곳으로, 400㎡ 규모의 전시관과 한과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1200㎡ 규모의 교육관을 갖췄습니다.

[장암저수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남자 주인공이 시간을 멈추고 여자주인공에게 몰래 키스를 했던 곳으로, 국망봉자연휴양림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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