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소설(小雪) 무렵 손돌바람 불어오는 길목

김포시에는 한 설화가 전해집니다. 손돌은 고려 고종이 몽고군의 침략을 피해 강화도로 피난할 때 뱃길을 잡은 뱃사공입니다. 험한 물길에 불안을 느낀 왕이 그의 목을 베려고 하자, 그는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워 왕이 가야할 길을 일러준 후, 목숨을 잃고 맙니다. 이에 왕은 죽임을 당하면서도 뱃길을 일러준 손돌의 충성심에 감복해 덕포진 언덕에 그의 무덤을 만들고 제사 지내 위로했습니다. 이후 이 물목은 ‘손돌목’이 됐고, 이맘때 부는 추운 바람은 ‘손돌바람’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김포의 옛 지명은 ‘신성한 땅’ 검포

고구려 때는 ‘신성한 땅’을 의미하는 ‘검포현’, 신라 때는 김포로 불렸습니다. 형제간의 우애를 위해 주운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져버렸다는 ‘투금뢰’ 전설에서 김포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1914년 통진부와 양천현을 흡수해 김포군이 됐고, 1998년 김포시로 승격됐습니다.

5천년 동안 쌀을 생산한 곳

강화만과 한강 하구, 염하 등이 3면을 둘러싸 ‘김포반도’로 불립니다. 덕분에 일찍부터 조운과 수산업이 발달했고, 갯벌과 한강 하류의 퇴적층이 부려놓은 비옥한 땅으로 벼농사도 발달했습니다. 무엇보다 1987년에는 김포 통진면 가현리에서 5천여 년 전의 볍씨가 발견돼 화제를 모았습니다. 신석기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이 벼농사를 지으며 살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강화도 방어의 최전선

동쪽은 한강을 건너 파주시와 고양시, 서쪽은 염하를 건너 강화도, 북쪽은 조강을 건너 개풍군에 접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로 김포에는 역사적으로 많은 관방시설이 설치됐고, 지금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어 군부대의 방어시설이 유난히 많습니다. 대부분 강도(江都)인 강화도를 방비하기 위해 염하에 접해 설치한 것들입니다. 덕포진과 문수산·애기봉·대명항·월곶나루 등이 이 바닷길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대로 꼽힙니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기억이 담긴, 김포

[대명항]

규모는 작지만 어시장과 어판장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습니다. 염하를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해넘이가 아름답고, 항 북쪽 끝에 있는 함상공원에서는 퇴역한 함정에 올라 다양한 해군체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덕포진]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인 손돌목에 설치한 조선시대 군영입니다.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때 서구열강과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포대 위로 1.5km의 해안산책로가 조성돼 있습니다.

[문수산성]

조선 숙종 때 강화도 방어를 위해 쌓은 성곽으로,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격퇴시킨 역사 깊은 사적지입니다. 날씨가 쾌청한 날 이곳에 서면, 멀리로 황해도 개풍군이 조망됩니다.

[장릉]

6·25전쟁 때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어느 곳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육안으로도 북한 땅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김포국제조각공원]

문수산 기슭 2만여 평 부지에 자리한 조각공원으로 다니엘 뷔렌, 솔 르윗, 지오바니 안셀모 등 거장들의 작품 30여 점이 설치돼 있습니다. 2.2km 길이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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