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자치의 시대를 열어갑시다”

새해를 맞아 지방자치라는 담론을 새로운 기분으로 되새겨 본다. 그런데 ‘경기도민 또는 국민들은 지금의 지방자치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던지면 지방 자치를 전공하는 학자의 한 사람으로 왠지 위축감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지난 20년 동안 우리의 지방자치는 일상생활 속으로 친숙하게 다가오는 데 실패한 셈이다. 주민이 스스로 선출한 지방정부에 의한 자치는 이뤄졌지만, 이것이 적극적인 주민 참여에 의한 자치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와의 관계에서 ‘분권’이라는 이슈에 매몰돼 주민과의 관계 형성에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지역주민들이 4년에 한 번 선거를 통한 참여로는 진정한 자치를 이루기에 부족했던 것이다.
남재걸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정유년 정초를 맞아 경기도의회에 ‘이 시대는 어떠한 자치를 요구하고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권하고 싶다. 시대가 요구하는 자치와 관련된 쟁점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생활자치’의 중요성을 강조 하고 싶다. 생활자치란 ‘일상생활과 관련된 공공영역에서 주민이 자발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일체의 활동’으로 정의된다. 즉 생활자치의 핵심요소는 사회적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구성이며, 이를 통해 개인에게는 자아실현을, 지역사회에는 공감과 연대를 통한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일이다.
생활자치는 기존의 주민자치를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이다. 지방정부와 주민과의 관계에서 주민들이 보다 많이 정책에 참여하는 것이 생활자치의 전부는 아니다. 생활자치는 이러한 전통적 주민자치의 모습을 포함하고 이를 더 확장해 주민과 주민과의 관계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공동체가 되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상의 행복을 느낀다. 따라서 생활자치는 주민과 주민과의 관계를 통해 지역주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작업인 것이다. 생활 자치는 사회적 결속의 새로운 모습이며 새마을 운동의 21세기적 형태인 것이다. 아마도 철학자 러셀(Russell)이 고민한 ‘삶의 진보를 위해 필수적인 개인적 자주성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사회적 결속을 어떻게 결합할 것 인가’에 대한 현대적 답변은 생활자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생활자치의 모습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현할 것 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우선 지방의회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통해 지역 사회 주민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간접자본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주민의 행복은 개인의 일상생활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이러한 관계의 확장은 그 지역사회의 문화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 단위 또는 그 이하 단위에서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집중하는 것이 생활자치의 시작이다. 조기 축구회, 마을부 녀회, 각종 마을단위 공동체는 우리에게 중요한 자산이며 생활자치의 시작이다. 조기 축구회가 형성됐다는 것만으로는 생활자치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조기 축구회가 새벽에 모여 축구를 하고,한 달에 한 번씩 마을 경로당을 청소 한다면 이것은 바로 생활자치의 모습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과의 건전한 관계가 형성되는 조기축구회의 모습과 마을 경로당 청소라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자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 주변의 공원을 우리가 청소하는 것은 우리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자생적 해결이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관계가 형성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실존적 자아의 실현이자 타인에 대한 희생과 봉사를 배우고 실천하게되는것이다.
그러면 지방의회는 어떻게 생활자치를 지원할 것인가?
첫째, 생활자치는 공동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거창한 이름을 가진 공동체가 아닌 지역의 소규모, 주민들 간의 사소한 모임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이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작은 봉사할 수 있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둘째, 보도블록과 가로등·가로수 등 사소한 것을 결정 하는 데에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참여를 유도하 는 각종 장치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역의 각종 자원의 투입을 토목이나 건설위주에서 주민 간 관계를 형성하도록 지원해 주민들간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자본을 구축하는데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방의회는 새로운 지방자치의 패러다임을 빠르게 흡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방공무원의 변화를 재촉해야 한다. 결국 생활자치의 패러다임을 재촉하는 지방의회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