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2일의 해방, 오늘까지 이어진 100년의 자유
-안성 3·1운동기념관
이른 새벽, 천덕산에서 내려온 푸른 안개에 둘러싸인 만세고개탑이 아침 햇살에 점차 고개를 드는 모습에 고개가 절로 무거워집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과 차량이 넘나드는 안성시 원곡면과 양성면 경계의 ‘만세고개’는 지금도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자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뜨거운 염원을 알리는 역사적 상징 공간으로서 시민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습니다.
3·1운동 이후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우리 민족의 열기는 전국으로 퍼져나가 이곳 안성에서도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3월 11일 양성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처음 시작된 만세 시위는 이후 산발적으로 이어지다 28일 고종의 국장을 참관하러 서울에 갔다 온 최은식이 이유석·홍창섭 등과 손잡고 본격적으로 다시 전개하게 됩니다
급기야 4월 1일에는 원곡면사무소 앞에 주민 1,000여 명이 모여 횃불을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성은고개, 지금의 만세고개를 넘어 양성면으로 행진해 동항리에서 만세운동을 하던 1,000여 명과 합세하여 주재소를 소각한 뒤 양성우편소와 면사무소로 가서 집기와 물품을 부수고 서류를 불태웠습니다.
이곳 안성이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과 함께 전국 3대 실력항쟁지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이로써 양성면과 원곡면은 일본인을 완전히 몰아내고 ‘2일간의 해방’을 만끽하게 됩니다.
원곡면 천덕산 해발 200m에 위치한 안성3·1운동기념관에는 이러한 안성 지역의 만세운동과 관련한 다양한 기록과 유물, 더불어 순국선열 25위와 애국지사 195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습니다. 체험과 전시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간으로 들어서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3·1운동이 벌어지던 일제강점기의 시대상과 항일운동을 했던 열사들이 얼마나 큰 고초를 겪었는지 세세하게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체험관에는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안성 열사들이 고문을 당한 현장을 생생하게 만들어 놓아 당시 독립운동에 나섰던 민초들의 고통과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기념관 외에도 안성시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원곡면사무소 앞에 ‘3·1독립 항쟁지’, 양성면 동항리 사거리에 ‘3·1독립 운동 항쟁지’라는 기념비가 각각 설치돼 있습니다
남한강·금강·안성천의 발원지이자 높고 넓은 민족정신이 이어져 내려오는 곳, 안성시에 간다면 필히 이곳을 한번 둘러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