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가장 뜨겁게, 가장 열렬하게 – 화성 제암리3 · 1운동순국기념관

[Part 4.] 가장 뜨겁게, 가장 열렬하게 
– 화성 제암리3 · 1운동순국기념관

 

풍요의 고을을 의미하는 화성(華城)은 동북쪽으 로는 야트막한 구릉 지대를, 서쪽으로는 평야 지대를 이루고, 제부도와 우음도, 오래된 건축물을 따라 시간의 톱니바퀴가 천천히 흐릅니다.

이곳 화성은 전국에서 일어난 3·1운동 와중에 일제에 가장 격렬한 저항 의지를 불태움으로써 결코 잊을 수 없는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 됐습니다.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현 화성시 향남읍)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된 것은 구한말 군인으로 활동하던 홍원식(洪元植, 1877~1919)이 1907년 군대해산 후 고향인 제암리로 돌아와 개신교 교회인 제암리교회의 권사로 있으면서 구국동지회를 조직한 것이 신호탄이 됐습니다.

3월 28일 송산면 사강시장에서 시작된 3·1운동은 31일 발안시장에 이어 4월 3일 장 안면과 우정면 2개 면이 합세하면서 만세 행군은 31km 띠에 2,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은 일제 무단통치의 상징인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파괴하고 일본 순사를 처단했습니다.

이에 일본은 더없이 잔인하게 보복했습니다. 4월 15일 아리타 중위는 보병 11명을 이끌고 제암리로 들어와 마을의 성인 남자들을 교회로 집결시킨 뒤 건물 밖에서 안으로 총을 난사하고 불을 질러 한꺼번에 학살했습니다. 또 인근 고주리로 건너가 독립운동가 김흥렬(미상~1919) 일가를 참살하고 그의 집을 방화하는 일까지 저질렀습니다.

일제의 이러한 만행은 캐나다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의 보고서와 임시정부 파리위원회에서 발행한 ‘독립운동사-3·1운동사’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됐고, 이를 계기로 대내외적 항일투쟁이 더욱 가열됐으며, 대한민국 독립의 당위성을 높이는 결과를 얻게 됐습니다.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태극기가 꽂혀 있는 3·1운동순국기념탑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앞에 서면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마치 그 시절의 만세 소리 처럼 들려옵니다.

전시관 안에는 이 참혹했던 사건을 증언하는 다양한 사진과 인터뷰 영상, 유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해 온 많은 이의 노력이 모여 만들어 낸 곳. 그 곳이 바로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이니 잊지 말고 꼭 한번 들러 볼 일입니다. 2020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제암리 독립운동역사문화공원도 건립 중입니다.

한편 이곳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남양에는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성모마리아 순례성지 ‘남양 성모성지’가 있습니다. 화성 8경에 드는 이곳은 병인박해 당시 이름 없이 희생된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일제강점기에 억울하게 희생된 독립 운동가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천상의 화원으로도 소개되는 남양성모성지를 중심으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며 3·1운동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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