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신정현에서 도의원 신정현으로,
이제 다음 세대를 위한 정치를 시작합니다
신정현 의원(더불어민주당, 고양3)
글 임도현•사진 정현규
청소년, 세상을 바꾸는 꿈을 품다
“활동가란 ‘자신이 느끼는 문제의식을 통해 무언가를 변화시키려 실천하는 사람’이에요. 제 경우 중3 때 구토를 하며 쓰러진 친구를 도와주면서 처음으로 보람을 느꼈고,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학생회장이 돼 본격적으로 청소년 정치 참여 운동을 시작했어요. 전국의 청소년단체와 함께 선거 연령을 낮추는 운동을 해 선거법 개정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죠. 선거 연령이 목표였던 만 18세가 아닌 만 19세로 결정됐지만, 청소 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가졌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신 의원은 활동가의 길을 접고 평범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제 모습은 동시대 모든 청년들 의 삶이었죠. 내 배부르고 내 등 따신 것만 신경 썼던 게 부끄러웠던 저는 청년들의 어려운 현실을 바꾸는 일이 정치라는 사실을 깨닫고 2012년 제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청년비례대표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 의원은 선발 과정에서 고배를 마시게 된다. 이후 그는 제주 강정마을과 쌍용자동차 투쟁 현장, 송전탑으로 고통받는 밀양의 어르신들을 찾아가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눴다. 눈물이 고인 곳으로 찾아가 함께 울겠다는 다짐이 그 발걸음을 재촉했다.
청년들이 살 만한 세상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던 신 의원은 마을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동네 청년들과 만든 공동체 리드미(READ ME)는 청년들과 마을공동체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한 공유공간 ‘지하’를 만들었고, 청소년들과 함께 대안학교 ‘비밀기지’를 세웠다. 청년농부모 임 ‘청년새참’, 대안언론 ‘라됴미’ 등 마을공동체를 실험하고 실천해 온 그는 당시의 역할을 ‘공동체 조직가’로 정의했다.
“저는 밤에 대리운전하고 낮에 청년 활동을 했습니다. 필요한 만큼의 돈만 벌고 나머지 시간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쓰겠다고 다짐했어요.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며 씀씀이를 줄이고 적은 돈으로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익히며,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되기 쉬운 청년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신 의원은 당시 자신을 ‘백수’라고 소개했다. 놀고먹고 무능력 하다는 의미의 백수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주인이 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백수다. 그는 정치의 영역에서도 주체적이고 당당한, 백수다운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 한다.
그는 지역활동가로서의 가장 큰 성과는 청년당사자들과 함께 만든 「고양시 청년 기본 조례」 제정 경험이라고 말한다. 당사자의 정치 참여는 도의원으로서 정치활동을 펼치는 기반이 됐다. 학교 현장에서 통일 교육을 하는 강사들과 관련 단체들이 함께 만든 「경기도 통일교육 활성화 조례 전부개정조례」, 사회안전망 의 사각지대에 놓인 프리랜서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경기도 프 리랜서 지원 조례」는 조례 제·개정 전까지 10여 회 이상의 시민 토론회와 당사자 인터뷰, 간담회와 연구용역 등을 시행하며 만든 법안이다. 그가 전국 최초로 제정한 「경기도 시민참여형 에너지 전환 지원조례」는 마을활동가로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시민참여형 에너지 전환 지원조례」는 공공부지 또는 공공시 설 등에 유휴공간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마을공동체가 재생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원자력·화력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자는 것입니다. 소비하고 남은 전기는 한전에 판매하여 수익금으로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위한 핵 심정책인 것이죠.”
쓰러진 친구를 업고 내달리던 신정현은 여전히 정치와 정책의 효능감을 맛보지 못한 소외된 도민들을 위해 더 낮은 곳으로 내달리겠다고 다짐한다. 남다른 삶의 궤적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되는 ‘백수’ 청년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정치 참여의 현장으로 나아가려는 신 의원의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
Q.도민에게 한 말씀
A.‘동네 형’이나 ‘동네 청년’ 같은 친근한 존재로 불리며 지역에서 청년 활동을 해왔습니다. 주민들에게 말하기 전에 항상 듣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이는 도의원이 된 지금도 마 찬가지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저는 동네에서 만나는 편안한 동네 청년으로 도민들을 대할 것이며, 활동가의 길을 걷겠습니다. 도의원 임기를 마친 후에도 언제나 도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