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용마는 아기장수를 기다릴지어니

In 경기천년을 담다, 행복경기로(路)

“용인시(龍仁市)에는 한 설화가 전해집니다. 아기가 태어나자 바위에서 용마가 나왔습니다. 아기는 힘이 장사였지만, 이를 두려워한 사람들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사람들이 아기를 묻기 위해 땅을 파자 그곳에서 칼과 투구가 나왔습니다. 잠시 후 용마는 아기가 죽자 태울 주인이 없음을 알고 슬퍼했습니다. 액교산 용마바위에는 용마가 몸부림치며 울부짖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전해집니다.”

 

한국민속촌

주인잃은 용마의 슬픔이 깃든 곳

고구려 때는 ‘구성현’이라고 불렸습니다. 1413년 이 지역의 이름인 ‘용’구 현과 치‘인’현을 합쳐 ‘용인’이라 불렸습니다. 용인은 비록 작은 고을이었지만 남북으로 통하는 길목에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습니다. 한편 신라 말 도선국사는 용인 땅의 형세를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 라고 말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략적 요충지

삼한시대 마한에 속했으며, 훗날 백제의 영토가 됩니다. 475년 고구려 영토로 예속됐지만 551년 백제가 신라와 함께 북벌을 펼쳐 되찾아 왔습니 다. 1232년 김윤후가 몽골군을 격파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김충수가, 병자호란 때는 김준룡이 적군을 물리쳤습니다

명실상부한 교육의도시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향교 중 국내 최초인 용인향교가 1400년 세워졌습니다. 이어 중종 18년인 1523년 양지향교가, 1576년에는 충렬서원이, 1650년에는 심곡서원이 설립됐습니다. 심곡서원의 명륜당에서 시작된 명륜학원은 근대교육이 시작된 곳입니다. 국내 최초의 중등 교육기관 태 성학원이 1940년 문을 열었습니다.

용인 치수사업공사 당시 모습(1962년)
기흥구 현재모습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고장 ‘용인’|

에버랜드
백남준 아트센터

처인성

고려시대 지금의 수원에 위치해 있던 처인부곡의 토성으로, 성곽 둘레는 425m에 달합니다. 대몽항쟁의 전승지로 유명하며, 임진왜란 당시 관군이 왜병으로부터 처인을 재탈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79년 처인성대첩 기념비가 준공됐고, 1977년 경기도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됐습 니다.

 

심곡서원

심곡서원

1650년 조광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했습니다. 흥선대 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철거되지 않았던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로,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원내의 500년 된 느티나무는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습니다.

 

경기도박물관

경기도 역사와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1996년 개관했습 니다.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밝히는 연구·전시·교육과 더불어 소중 한 문화유산을 수집·보존하고 있습니다. 구석기시대에서 근현대에 이 르는 경기도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한국민속촌

한국민속촌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 지난 1974년 문을 열었습니다. 조선시대 500여 년의 풍습과 일상생활을 재현했습니다. 기와집 132동, 초가 집 143동, 민속품 2만 1,000여 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줄타기 등 다양한 세시풍속을 만나볼 수 있으며, 옛 장터에서는 빈대떡 등이 가던 길을 멈추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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