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그리움에 사무쳐 솔숲의 바람이 되어

‘융릉 솔숲 바람은 건릉을 향해 붑니다. 어느 날은 아버지의 따뜻한 숨결로, 또 어느 날은 아들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화성시(華城市) 에는 왕이 되지 못한 사도세자와 그의 아들 정조가 잠든 융릉과 건릉이 있습니다. 조선 제22대 왕 정조는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겼습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조선의 최고 왕릉 자리로 손꼽히던 곳이었습니다.

 

풍요를 기원한 이름 ‘화성’

1794년 정조는 수원부 읍치와 현륭원을 지킬 성곽 터를 둘러 보던 증 장자에 나오는 한 구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정조는 화인축성(華人祝聖, 임금에게 장수와 부 그리고 많은 후손 을 기원함을 의미)이라는 구절 중 ‘화’와 ‘성’을 따 이 땅을 화성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화성에는 ‘풍요의 고을’이 되기를 바 란 정조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1974년 조암시장 정화사업 준공식
2014년 조암시장 모습

 

 

 

 

 

 

 

오랜 역사가 깃든곳

삼한시대 당시 마한의 54개 소국 중 3개 소국에 포함됐습니 다.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점유하고 있던 5세기 말부터 신라 가 삼국을 통일할 때까지 ‘매홀’이라 불렸습니다. 이후 1793년 정조 때 화성유수부로 승격되면서 ‘화성’이라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 수원이 시로 승격·분리되면서 화성군으로 개편됐고 2001년 화성시로 승격됐습니다.

궁평낙조
남양성지

 

 

 

 

 

 

 

 

 

남다른 명소를 엿보다

용주사는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마련된 곳입니다. 홍 살문이 있고 경복궁과 창덕궁처럼 입구가 3곳에 달하며 사각돌에 둥근 기둥을 받친 것 역시 궁궐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정조는 용주사 재실 옆에 왕의 초상화를 봉안토록 지시했습니다. ‘부모의 큰 은혜에 보답하라’는 부처의 가르침을 용주사 나무와 돌 곳곳에 새겨 넣었습니다.

 

|화성의 역사와 풍광을 품은 화성8경|

제1경 ‘융건릉 백설’

융건릉은 정조가 그의 부친인 사도세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든 무덤(陵)입니다. 사계절 수려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제2경 ‘용주범종’

용주사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을 이장한 후 명복을 빌던 곳입니다. 용주사 범종에는 정조의 애절한 효심이 깃들어 있습니다.

제3경 ‘제부모세’

광활하게 펼쳐진 12㎞의 해안선과 모래벌 끝에 있습니다. 모세의 기적처 럼 하루 두 번 양쪽으로 바닷길이 열리며 섬이 드러납니다.

제4경 ‘궁평낙조’

화성을 대표하는 항구인 ‘궁평항’은 풍광이 뛰어난 곳입니다. 서해로 지는 낙조와 해송 그리고 어선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룹니다.

제5경 ‘남양황라’

평택과 화성의 남양만 하구를 막아 만든 드넓은 농촌평야입니다. 가을이 면 드넓게 펼쳐진 황금들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6경 ‘입파홍암’

‘서서 파도를 맞는다’는 이름을 가진 입파도(立波島)는 기암괴석과 각양각색의 바위들로 이뤄진 비밀스러운 피서지입니다.

제7경 ‘제암만세’

역사적으로 아픔이 서린 곳입니다. 일본 헌병에 의해 주민들이 무차별 총격을 당한 곳으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장소 중 하나입니다.

제8경 ‘남양성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1만여 명을 위한 현양성지입니다. 높이 3.5m의 화강감 성모상 등이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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