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따뜻한 표정의 이천 장호원 전통시장

기묘하다. 시간이 장호원 전통시장을 비껴간 걸까. 빨강·노랑·파랑의 형형색색 천막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곳에 들어서니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자연스레 어릴 적 한 손에는 엄마 치마를, 또 한 손에는 어묵꼬치를 들고 시장을 누비던 일곱 살 꼬마를 소환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따뜻했던 추억 속 재래시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천 장호원 전통시장. 그래서 더 반갑다.

 

경기도와 충청도 경계에 서는 5일장

“맛 한번 보셔!” “어! 오랜만이네. 왜 한동안 뜸했어?” “아들 집 다녀왔구먼.”

상인과 손님의 대화는 오랜 사이인 것처럼 정답다. 안부를 묻는 다정한 대화가 오간다. 그런데 무엇인 가 이질적인 게 느껴진다. 귀를 쫑긋 세우니 서로 다른 지역의 사투리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장 여기저기서 경기도·서울의 표준말과 충청도 사투리가 귀에 꽂힌다.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장호원 전통시장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장호원은 경기도 제일 남단에 위치하며 다리 하나를 두고 충청북도 음성군과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경기도에서는 이천 장호원으로, 충북에서는 음성 장호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장호원은 예전부터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로 장호원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래, 위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4일과 9일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서울은 물론 근교의 여주와 충북, 충남 등지의 상인과 손님이 장호원 전통시장을 가득 메운다. 1936년 일제강점기 작은 ‘전’에서 시작해 대규모 전통시장이 된 장호원 전통시장은 수십 년간 다양한 지역 보부상들의 삶의 터전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장호원의 지리적 특성을 듣고 보니 지리산 자락에서 온 꿀, 통영 굴, 단양 아로니아 등 팔도 산지 이름이 눈에 띈다.

 

“쥐뿔만 빼고 다 있어!”

장호원 전통시장만큼 ‘시장 구경’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도 드물다. 복개천을 따라 형성된 난전들. 채소, 생선, 반찬, 옷, 양말, 그릇 등은 기본이고 아주 오래된 골동품이며 즉석 시계수리점 등 “쥐뿔만 빼고 다 있어!”라는 상인의 소 리가 무색하지 않다.

난전에 풀어 놓은 할머니들의 알록달록 보따리를 살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마른 나물이며 깨, 마, 고춧가루, 수세미…. 사실 장호원 전통시장의 정다움 과 생동감은 할머니들의 각양각색 보따리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텃밭에서 기른 고들빼기를 장터로 들고 온 할머니는 3,000원뿐이라는 아기 엄마에게 “그것만 줘”라며 시골 인심을 선보이신다.

무엇보다 장호원 전통시장의 명물은 ‘햇사레 복숭아’다. 입 안에 흥건히 고이는 풍부한 과즙, 달콤함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이 때문에 햇사레 복숭아 축제 기간인 9월이면 복숭아를 사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그뿐이 아니다. 가을이면 고추와 마늘을 사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단다. 올 가을 이곳을 방문하면 좋을 듯하다.

장터의 백미 먹을거리. 장호원 전통시장 또한 수많은 맛집이 즐비하다. 김치전, 호박전·수수부꾸미 등 각종 부침개에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호떡, 쫀득쫀득한 꽈배기, 한우 장터국밥, 치킨과 족발 등이 지천이다.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기름 냄새를 풍기는 전은 몇 미터 전부터 ‘들어오라’고 아우성이다. 누가 이 맛있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이미 가게 안은 만석이다.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장호원 전통시장’

“에이, 기분이다! 오늘은 동태 한 마리 더!”

주인의 넉넉한 인심에 손님들 또한 기분 좋은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3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생선 가게를 꾸려온 박정선 씨. 지금은 큰아들이 대를 잇기 위해 함께해 더 든든하다고. 평생 자기 삶의 배경은 장호원 전통시장이었다는 그는 오랜 추억 속 시장 모습을 꺼내 놓았다.

“보이세요? 저 안쪽 주택에서 태어났어요. 60년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왔죠. 지금까지 장호원 시장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다 기억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지만, 옛날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단옷날을 비롯해 명절마다 열렸던 씨름 대회가 아직도 눈에 선해요. 수백 명이 씨름판을 빙 둘러싸고 출전자들을 응원하는데 정말 신났죠! 지금은 여러 이유로 규모가 축소됐지만, 다시 힘을 모아 살려야죠!(웃음)”

현재 장호원 전통시장은 그 화려했던 명성을 찾기 위해 상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도·시의회 모두가 힘을 모으고 있다. 먼저 장호원 전통시장 곁에서 흐르는 청미 천이 생태하천으로 복원되면서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살다 보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다지만, 적어도 장호원 전통시장만은 수십 년 전 시장 특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통시장 특유의 따뜻함과 포근함까지 말이다. 올봄 놀 멍 쉴 멍 장호원 전통시장으로 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장호원 전통시장은|

  • 위치 :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서동대 8965번길 36
  • 주차 : 공영주차장과 시장주변 주차 가능
  • 장날 : 매월 4 · 9 · 14 · 19 · 24 · 29일, 오전 7시-해질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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