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웠던 겨울이 가고 온 세상에 봄이 왔건만, 아버지의 한숨 소리는 더욱더 커지는 듯하다. 해가 갈 수록 아버지의 농사일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농사일이 아니라 아버지의 희망과 꿈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지켜보는 자식으로서 가슴 아프다. 올해는 좀 나아지려나 기대하며 기다린 봄이건 만 점점 쇠약해지는 몸이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있기에 푸념과 한숨이 점점 늘어간다.
어쩌면 아버지는 농사일을 하고 싶어 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몸이 건강했던 바로 그때, 봄이 오고 농사를 짓던 그때의 건강하던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몇 년 전 갑자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하는 것도 자식들 걱정시키는 거라며 웬만해선 전화를 하지 않던 분이 아버지가 쓰러져 구급차로 병원에 가고 있다고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퇴근 후 병원으로 간 나는 반신이 마비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울컥 눈물이 났다. 차마 아버지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일 수 없어서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아버지의 마비된 팔과 다리를 주무르고 쾌차하실거라 위로해 드렸다. 어렵사리 만난 당직의사는 ‘위험한 고비는 넘겼고 마비된 것은 점차 좋아지지만 어디까지 좋아질지는 자신들도 장담 못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며칠 더 입원치료를 한 뒤 퇴원했다. 마비됐던 몸은 걱정과는 달리 빠르게 회복 되었지만 감각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마비됐던 몸을 다 움직일 수 있지만 전 같지는 않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오면 아버지는 농사일을 걱정하신다. 불편한 몸이 금방 좋아질 리 만무한데도 농사를 짓겠다며 봄마다 다짐을 하고, 이제는 힘이 부친 다는 걸 깨달으면서 한숨을 짓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아버지가 그리도 그리워하는 건강했던 시절은 봄처럼 돌아올 수 없겠지만 그래도 희망만은 돌아왔으면 한다. 아버지가 농사일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 이제는 자식들, 손자손녀들을 보면서 남은 시간 행복하게 사시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