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틴어로 ‘독(poison)’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의 존재는 19세기 후반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내가 알려지기 전 은밀하게 사람들과 동거를 시작하면 그 사람은 아프거나 죽어 나갔다.
나를 알지 못할 적에 사람들은 부적이나 소금, 동지에는 팥죽 같은 것을 내가 무서워할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러다 나의 존재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과거 사람들은 병을 일으키는 작은 미생물은 세균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세균이 아닌 그 어떤 것, 액체(fl uid) 혹은 입자(particle)가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했고, 세균보다 작은 것은 ‘독’이라 추측했다. 그리고 세균보다 작은 전염성 병원체로 나를 virus(poison)라 이름 붙였다.
최초로 나의 존재를 알린 사람은 드미트리 이바노브스키(DmitryIvanovsky)였다. 담배모자이크 질병을 연구하던 중 세균(bacteria) 진균(fungus) 기생충(parasite)을 모두 제거하고, 건강한 담뱃잎에 접종해도 똑같은 질병이 나타나자 “담배모자이크 병은 극미생물에 의해 발생한다”고 학계에 보고했다.
이후 네덜란드의 식물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마르티누스 베이에링크(Martinus Beijerinck)가 1898년 담배모자이크 질병이 미생물보다 더욱 미세한 감염원에 의한 것임을 실험으로 확인하고 ‘virus’라는 나의 이름을 처음 도입했다.
나는 생명체와 무생물체의 특징을 다 가지고 있는데, 생명체의 특징으로는 ‘증식’ ‘유전적 돌연변이 발생’ ‘진화하는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무생물체로서의 특징은 숙주 감염 이후에만 증식하기에 단독으로 증식할 수 없고, 감염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단백질과 핵산의 결정체일 뿐이며, 물질대사를 할 수 없고, 에너지를 만들 수 없다는 것 등이다.
지금 나는 또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출현했다. 사람을 숙주 삼아 생존본능을 되살리다 보니 사람들로부터 원망과 궤멸적 타격의 대상이 됐다. 나도 살고 싶다. 그렇기에 나를 살기 힘들게 하는 사람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우선 손 씻는 사람은 내편이 아니다. 동지적 유대감이 넘치는 세균과 더불어 증식에 불리하고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로만 손 씻기를 하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 손에 붙어 있기에 생명에 지장은 크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비누를 사용해 손등과 손바닥을 꼼꼼하게 씻으면 표면장력이 감소돼 붙어 있기 힘들다. 즉 죽지 않고 씻겨 내려간다. 손 세정제는 단백질인 나를 변성시키기에 이 또한 치명적이다.
질병관리본부가 권고하는 손 씻기 6단계를 소개한다. ①손바닥과 손바닥을 마주대고 문질러 준다. ②손가락과 마주 잡고 문질러 준다. ③손등과 손바닥을 마주대고 문질러 준다. ④엄지손가락을 다른 편 손바닥으로 돌려주면서 문질러 준다. ⑤손바닥을 마주 대고 손깍지를 끼고 문질러 준다. ⑥손가락을 반대편 손바닥에 놓고 문지르며 손톱 밑을 깨끗하게 한다. 6단계를 비누, 손 세정와 같이 하면 나는 절망적이다.
‘엣취’ 하는 재채기나 ‘콜록콜록’ 기침할 때가 새로운 숙주가 될 사람을 찾아 떠날 시기다. 그런데 옷소매로 입과 코를 가리고 하거나 마스크 착용은 비말로 비상해 새로운 숙주를 향한 개척의 꿈을 속절없이 무너뜨린다.
반면 공포 바이러스, 가짜뉴스 바이러스, 마스크 매점매석 바이러스, 혐오 바이러스 등은 촘촘해지는 방역망에 틈새를 내어준다. 내가 싫어하는 손 씻기나 기침예절 준수, 마스크 착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니 점차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찾아 자리를 잡고 증식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본다. 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 그분들은 내편이다.
중부일보에 기고한 칼럼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