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훔쳐다 꾹꾹 눌러 간직하고 싶다, 계절을 따라 느리게 걷는 여행
봄이 찬란한 것은 스치듯 지나기 때문이다. 연초 이런저런 바쁜 일이 휘몰아치면 봄은 오간 데 없고 어느새 다음 계절이 성큼 다가온다. 봄의 끝자락을 붙잡고 아쉬움만 토로하는 것은 이제 습관에 가깝다. 이 계절을 주머니에 꾹꾹 눌러 담아 두었다가, 아무 때나 꺼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시간을 느슨하게 사용하며 봄날을 끈질기게 붙잡아 두는 일, 느리게 걷기. 봄을 훔칠 수 없다면, 천천히 걸으며 기억 속에 꾹꾹 눌러 담아 보는 것은 어떨까.
경안천습지생태공원은 우연히 태어난 습지에서 시작했다. 1973년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일대의 저지대가 물에 잠겼는데, 이후 자연적으로 습지로 변했다. 계획 없이 생긴 습지가 주변을 지나는 새들에게는 호재였던 듯하다. 습지로 철새와 텃새가 모여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다양한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봄이면 백로가 찾아드는데, 마침 무리에서 벗어난 백로 한 마리가 따사로운 햇볕을 홀로 즐기는 모습이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인다.
백로가 여유를 즐기는 사이 봄은 부지런히 꽃을 틔운다. 산책로를 따라 벚꽃이 만개하고, 초록의 어린잎들이 고개를 내민다. 작은 참새들은 가지와 가지 사이를 건너며 노래를 한다. 봄을 만끽하며 걷는 길을 따라 시가 전시돼 있다. 낱말과 행간을 음미하며 작은 벤치에도 잠시 앉아 여유를 즐기다 보면, 고작
2㎞ 남짓한 산책로를 걷는 데 1시간이 부족하다. 광주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서는 모두가 부지런하고 빠를 필요는 없다. 저마다의 속도로 걸어가며 계절과 어우러지면 그만이다.
주소 광주시 퇴촌면 정지리 525
똑바로 걸어야 한다.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도시의 사람들은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길을 선택하는 데 익숙하다. 곁길로 새어 나가거나 잠시 머뭇거리는 순간 경쟁에서 뒤떨어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은 도시인이 가진 지병이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과정은 바로, 쉼이다.
의왕 왕송생태습지는 금천천에서 왕송호수로 가는 물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습지의 갈대와 부들 등 수생식물이 호수로 향하는 물을 잡아두는데, 그때 오염물질이 자연적으로 걸러진다. 물이 습지에서 쉬는 이유는 멈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깨끗한 물이 돼 호수를 이루기 위함이다.
왕송생태습지에 들어서면 제멋대로 나 있는 둑길을 마주한다. 흙을 쌓아 만든 둑길은 삐뚤빼뚤하게 연못과 연못 사이를 가로지른다. 이곳에서는 앞으로만 걷지 않고, 둑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걸어보기 바란다. 효율적이지 않지만 자유롭고, 빠르지 않지만 풍요로운 산책.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연못을 거닐다 보면 그 끝에서 커다란 왕송호수를 만난다. 잠시 멈췄던 물이 맑게 정화돼 만들어진 호수는 계절을 따라 날아온 철새들의 휴식처가 된다. 그러니 여기 왕송생태습지에서는 조금 삐뚤게, 약간 속도를 왕송생태습지 늦춰 걸어 보는 게 좋다. 누구나 쉬어가기 좋은 찬란하고 맑은 계절, 어떻게 걸어도 결국 봄이다.
주소 의왕시 월암동 501
김포 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은 수도권에서 보기 힘든 대규모 인공 조류 서식지다. 김포 신도시 개발 단계에서 환경부의 철새 서식환경 보존 요구에 따라 조성됐다. 그러니 이 공원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새들이다. 김포 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에는 계절마다 다른 새들이 찾아온다. 원앙이 북쪽에서 내려오면 겨울이 시작되고, 저어새가 날아들면 봄이 무르익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새들이 계절을 배달하는 곳이다.
공원은 넓은 습지를 중심으로 벚나무 산책길, 습지생태원, 참나무류 숲, 송송숲, 낱알들녘, 오방원 등 6개 구역으로 조성돼 있다. 요즘 한강과 습지 사이를 가로지르는 약 3.4㎞의 산책로인 벚나무 산책길에서부터 천천히 걷다 보면, 종종 바람이 지나며 벚꽃잎이 눈처럼 내린다. 오른편의 한강은 탁 트여 있어 시원하다. 때로는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새들이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논병아리가 첨벙대며 노는 소리가 정겨운 멜로디를 만든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과 소음에 가려졌던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김포 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에서는 바람에, 물소리에, 꽃잎에, 그 모든 자연의 속삭임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팍팍한 도시 생활에 작은 숨구멍이 열릴 것이다.
주소 김포시 김포한강11로 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