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에는 생명과 건강과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사찰음식 명장, 선재 스님
쉽게 접하고 들을 수 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찰음식. 따듯한 봄날 사찰음식 명장이자 한식진흥원 전 이사장인 선재 스님을 만나 사찰음식에 대해 들어봤다
경기도 양평에 차려진 선재 스님의 음식연구소에는 봄이 완연했다. 따스한 햇볕이 마당에 촘촘하게 서 있는 장독대를 비추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선재 스님이 너그러운 말투로 맞이해 주었다. 그러고는 이내 직접 담근 식혜를 내어 주었다. 달고 고소한 향이 입안을 감싸고 돌았다. 식혜를 한 모금 마시자 선재 스님은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이 식혜에는 설탕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아요. 그런데 맛이 어때요? 달지요? 설탕 대신 소화가 잘되라고 엿기름을 넣었어요. 거기에 골담초를 띄웠습니다. 골담초는 뼈를 튼튼하게 해 준다고 해서 꽃 이름이 골담초예요. 식혜 하나도 이렇게 만들어 먹으면 약이 된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다 똑같아요.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지요. 부처님은 음식이 곧 약이라고 하셨어요. 사찰음식이란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에게 건강한 생명과 지혜를 주는 음식입니다.”
선재 스님은 사찰음식이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일반음식과 섞이고 상품화되면서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사찰음식은 단지 식재료나 반찬의 구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사찰음식은 단지 채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 속에 생명존중이 담겨 있어야 해요. 음식을 먹는 쉽게 접하고 들을 수 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찰음식. 따듯한 봄날 사찰음식 명장이자 한식진흥원 전 이사장인 선재 스님을 만나 사찰음식에 대해 들어봤다. “사찰음식에는 생명과 건강과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사찰음식 명장, 선재 스님 73건 생명을 위한 일이에요. 깨끗한 음식을 먹는 것은 내 몸을, 내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이죠. 그런데 깨끗한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좋은 공기, 흙, 물, 바람, 곡식을 키우는 사람의 정성, 이런 것들이 모두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만 좋은 음식이 됩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곧 생명을 받는 일입니다.”
사찰음식 하면 채식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이는 사찰음식에 관한 오해에서 생겨난 선입견이다. 선재 스님은 기본적으로 채식을 위주로 하는 것이 맞지만, 특별한 경우 깨끗한 고기를 사용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찰음식이 완전한 채식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 경전을 보면 정육(淨肉)이라는 말이 있어요. ‘깨끗한 고기’라는 뜻이지요. 예를 들어, 닭을 키울 때 억지로 성장 주사를 맞히거나 닭장에 가두는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요. 닭이 자기 삶을 살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겠지요. 자연스레 면역력도 떨어지고, 건강하지 않은 상태의 닭이 됩니다. 그것을 우리가 먹지요. 깨끗하지 않은 육류는 사람한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동물의 삶과 생명을 충분히 존중해 줄 때 사람도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음식은 모든 생명과 연결돼 있습니다. 음식에 자연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야 비로소 사찰음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선재 스님이 사찰음식 강연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아이들이었다. 수원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건강한 음식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체험한 것이다. 이후 아이들의 부모에게 사찰음식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사찰 김치를 담가 먹었습니다. 사찰의 김치는 젓갈이나 마늘이 들어가지 않아요. 대신 장이 들어가죠. 그래서 절의 김치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아요. 아이들은 어른과 달라서 좋은 음식을 먹으면 금세 몸이 나아져요. 아이들 몸이 낫는 것을 보고 학부모들을 교육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그게 음식 강연의 시작이었지요.”
선재 스님에게는 아이가 아파서 찾아오는 부모가 제법 있었다. 아프기 전에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미 아파서 오는 아이들이 못내 안쓰러웠다.
“좋은 음식으로 아이들과 청소년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많이 했었는데, 강연이 많아지니까 제대로 못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뮤지컬 <그거 알아요? 음식은 생명!>을 제작했지요. 아이들이 좋은 음식을 먹고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앞으로 아이들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음식 학습을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나이가 들고 힘이 많이 떨어졌지만, 마지막 힘을 모아 그 일을 하려고 해요.”
선재 스님은 수원에서 태어났다. 스님의 외할머니는 수라간에서 일했기 때문에 음식을 다루는 데 능숙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함께 살며 음식을 배워둔 것이 사찰음식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스님의 아버지는 화성문화제에서 전주 이씨 대표로는 마지막으로 왕 행차에 참여했다. 경기도는 선재 스님의 역사이자 배움터였다. 경기도에 특별한 애정을 가진 스님은 경기도민에게 담담한 조언을 건넸다.
“다른 거 없어요. 아침에 쌀과 김치를 꼭 먹어야 해요. 쌀은 에너지예요. 밥에 김치만 잘 먹어도 하루가 달라질 거예요. 아프고 나서 음식으로 치유할 수도 있지만, 더 좋은 것은 아프기 전에 건강한 몸을 지키는 일입니다. 음식을 먹는 일은 곧 그 속에 스민 수많은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그 모든 생명에 감사하며 살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