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등록문화재

유엔군의 한국전쟁 최초 격전지

오산 유엔군초전기념비 & 옛 동판,
한국노무단(KSC) 안내판

 

오산 죽미령고개는 1950년 7월 5일 유엔군인 미군이 한국전쟁 최초의 격전을 치른 곳이다.

그 자리에는 아픈 현대사를 기억하기 위해 세운 상징물, 오산 유엔군초전기념비와 한국노무단(KSC) 안내판이 서 있다.

경기도는 유적의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을 기리고 후대에 보존하기 위해 제3호 경기도 등록문화재로 등록해 관리하고 있다.

글. 정명곤 사진. 정성화 참고.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북한군과 최초의 격전을 벌인 곳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하자 미국은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제8군 보병 및 포병부대 소속 총 540명으로 구성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를 우리나라에 파병했다.

 

스미스 특임 부대는 전쟁 발발 10일 만인 7월 5일 오산 죽미령고개에서 북한군과 최초의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스미스 특임부대 보병 150여 명과 포병 31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이 전투는 한국전쟁 초기 북한의 기습 남침에 의해 후퇴할 수 밖에 없었던 전황에서 유엔군인 미군이 최초로 북한군을 상대로 방어전을 펼쳤으며 많은 전사자가 발생했다는 데 역사적 의미가 깊다.

 

부대원 수대로 540개 돌로 건립

한국전쟁 종전 이후인 1955년 미국 제24사단은 부대원의 희생을 기리고자 부대원 수와 같은 540개 돌을 쌓은 유엔군초전기념비를 건립하고 동판에 전투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 기념비는 기단부와 탑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부의 이중 기울기 테두리와 탑 부분의 오벨리스크 형상은 미국의 기념 공간에서 많이 사용하는 형태다. 기단부의 이중 기울기 모서리에는 견고하게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내부에 모서리 보호 장치를 매설해 유지, 관리에 특별히 신경 쓴 흔적을 볼 수 있다.

 

1964년 유엔군초전기념비 동판이 도난당했으나 고(故) 지갑종 유엔한국참전국협회장이 하와이 골동품상에서 발견한 옛 동판을 국내에 들여왔으며, 현재 유엔군초전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유엔군초전기념비 왼쪽에는 한국노무단(KSC)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내판은 미 8군에 소속된 한국노무단이 1972년 9월 21일에 본 기념비를 보수했음을 알리는 안내판이다.

 

한국노무단은 1951년 6월 유엔군이 세운 한국인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유엔군과 국군의 전투 수행에 필요한 포탄이나 보급품을 전장에 적시에 운반하는 임무를 지녔다. 당시 포탄과 보급품을 지게로 지고 날라 지게 부대원이라고도 불렀다.

 

제3호 경기도 등록문화재 선정
오산 유엔군초전기념비 & 옛 동판, 한국노무단(KSC) 안내판 3점은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을 인정받아 2021년 10월 21일 경기도 문화재위원회 등록문화재분과위원회에서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 등과 함께 제3호 경기도 등록문화재에 등록됐다.
이로써 유엔군초전기념비 등은 문화재의 유지비 및 관리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