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김현탁 (소설가)
준호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막 퇴근하려는 무렵이었다. 반장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친구 재식이가 철봉에 매달려 놀다가 다리를 다쳤다는 것이다. 준호는 얼른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재식은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다리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많이 다쳤니?”
준호는 재식의 다리를 살펴봤다. 무릎 아래쪽이 부어 있었고 약간의 찰과상이 있었다.
“병원으로 가자.”
하필이면 간호 교사가 조퇴를 하고 일찍 가버려 준호는 응급처치도 못한 채 급히 병원으로 이동했다. 병원에 도착해 응급처치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크게 염려 말라고 했다. 약 일주일 정도 반 깁스를 하고 있으면 나을 거라고, 천만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준호는 절룩거리는 재식을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줬다.
“내일 많이 아프면 병가로 처리할 테니 집에서 쉬어도 좋아.”
준호는 그 말을 남기고 집으로 향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재식은 공부도 안 하고 결석도 많고 교우 관계도 좋지 않았다.
재식 어머니의 말을 들으니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만 해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부모 말도 잘 들었는데, 6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인 지금까지 말을 안 듣는다는 거였다. 용돈을 주면 모자를 좋아해서 모자만 사고, 용돈이 적다고 떼를 쓴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거였다. 준호는 이번 기회에 재식을 타이르며 소통하는 길을 열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예상과는 다르게 재식이 아픈 다리를 끌고 학교에 나왔다.
“다리 아프지 않아? 그냥 쉬지 않고.”
준호는 내심 재식이 기특했다.
“괜찮아요. 견딜만해요. 어제 선생님께서 집까지 데려다주셔서 고마웠어요.”
재식이 꾸벅 절을 하더니 교복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준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어제 선생님이 병원비 내셨잖아요. 엄마가 병원비 드리라고 했어요.”
“그걸 뭘 가져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관둬. 다시 갖다 드려. 그건 선생님이 재식이 공부 열심히 하라고 내 준거야.”
준호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재식은 미간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돼요. 이건 꼭 받으셔야 해요. 엄마도 말했지만 제가 생각해도 이건 당연히 받으셔야 해요. 안 받으시면 저 학교 안 나올래요.”
재식은 완강했다.
“허허, 이 녀석. 고집이 대단하군. 알았어.”
준호는 하는 수 없이 재식이 내미는 봉투를 받았다. 모처
럼 제자를 위해 쓸 수 있는 기회였는데, 굳이 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준호는 교무실로 가 재식이 준 봉투를 열어봤다.
“아니, 이런.”
준호가 쓴 치료비는 고작 5만 원이 조금 넘을 뿐인데, 봉투에는 1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준호는 거스름돈을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준호는 교사 생활 30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촌지나 선물을 받은 적이 없었다. 물론 스승의 날이나 학기 초에는 몰래 보내주는 학부형이 있었지만 모두 돌려주었다. 그런 준호가 비록 이유 있는 봉투를 받았지만 찜찜했다. 준호 어머니 입장에서야 치료비가 어느 정도 나왔냐고 물어보기 애매해서 조금 넉넉하게 넣어서 보냈으리라. 이해가 갔다. 하지만 준호는 비록 작은 돈일지라도 꼭 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준호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얼른 백화점으로 달려가 모자 가게를 찾았다. 가게 주인에게 요즘 유행하는 모자가 어떤 건지 조언을 얻어 추천한 모자 중에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다시 지갑 가게로 갔다. 아이들이 어떤 지갑을 좋아할지 몰랐지만 너무 비싸지 않는 지갑을 골랐다. 준호는 지갑 안에 만 원짜리 한 장을 넣었다. 그리고 짧은 내용의 쪽지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제자 재식아, 선생님은 네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학교에 나와 열심히 공부해줘서 무척 기쁘다.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모자와 지갑을 선물한다. 지갑 속에 만 원을 넣었다. 앞으로 용돈이 생기면 함부로 쓰지 말고 지갑에 차곡차곡 모으길 바란다. 선생님은 늘 재식이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담임 준호.”
금요일 오후. 준호는 조용히 재식을 불렀다.
“이거 선생님이 요즘 재식이가 열심히 학교도 다니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특별히 선물하는 거야. 아껴 써.”
준호가 재식에게 모자와 지갑을 건네자 어쩔 줄 몰라 당황하더니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몇 번이나 인사를 하더니 교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준호가 재식에게 선물을 건넨 지 한 달이 더 지났다.
재식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전 그런 줄도 모르고… 너무 고맙습니다.”
재식 어머니의 얘기를 들으니 재식이 무척 변했다고 한다. 돈 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고, 집에 오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와 싸우지도 않는다는 거였다. 어느 날 빨래를 하려고 옷을 뒤지다가 지갑을 열어 봤더니 돈이 두둑했다고 한다. 혹시 나쁜 짓을 하지 않았나 하고 추궁해보니, 선생님이 지갑과 모자를 사주셨다면서…. 그것도 모르고 있어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지금, 학교에서도 무척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성적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친구와 사이도 아주 좋습니다.”
“선생님은 정말 정의의 사도이십니다. 고맙습니다.”
준호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준호의 얼굴에 날아들었다. 준호는 기지개를 크게 켰다. 30년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