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공예의 아름다움을 찾다 – 수만 번의 닦달질과 울림 빛과 온기로 피어나 엄영민 은대공장

수만 번의 닦달질과 울림 빛과 온기로 피어나

엄영민 은대공장

 

은대공이란 은을 망치로 두드리는 방식으로 성형해 기물을 만드는 금속 공예다.
이 공예의 장인을 은대공장이라 한다.
은대공 외길 50여 년의 내공으로, 경기도공예품대전에서 두 차례나 큰 상(제48회 대상, 제50회 금상)을 수상한 교문공방 엄영민 은대공장을 만났다.
글. 구지회 사진. 정송화

 

금속을 따스하고 부드럽게 하는 선

지난 45년 동안 기술을 연마해 온 엄영민 은대공장이 은대공 작품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선’이다.

 

“금속이란 원래 성질이 차갑고 무겁지요. 그래서 잘못 제작하면 실용적이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습니다. 저는 금속이 따스하고 부드러워 보일 수 있도록 선에 신경 씁니다. 주전자 기물이라면 선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가 또 있어요. 주둥이 선에 따라 마지막 물방울이 깨끗하게 떨어질 수도 있고, 주전자 몸체를 타고 흘러 주변을 더럽힐 수도 있거든요.”

 

내공 깊은 기술을 인정받아 2014년에는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부부의 방한 선물로 그의 작품 ‘칠보 꽃 다관’이 선정되기도 했다.

 

“제작품뿐 아니라 은으로 만든 다기(茶器)가 많이 알려지는 계기였습니다. 은다기는 차 맛을 돋우는 효과가 있어요. 가령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보이차는 풀 냄새가 나는데 은다기는 그 냄새를 잡아주거든요. 물론 보기에도 아름답습니다.”

 

곧은 대나무와 붉은 노을을 닮다

“유독 대나무를 좋아해요. 대나무가 상징하는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성품’을 동경하거든요. 그래서 독립해 처음 만든 제 작품에 대나무를 새겼어요. 그리고 그 문양을 발전시킨 것이 바로 제48회 경기도공예품대전 대상을 수상한 ‘죽향’이지요.”

 

새겨 넣은 대나무는 곧 그의 작품에 오롯이 스며들어 있는 장인 정신이다.

 

그런가 하면, 제50회 경기도공예품대전 금상의 영예를 안은 ‘노을’은 은과 적동이 어우러져 붉은 물결무늬를 이루는 모습이 불덩이처럼 타오르던 부산 바다의 석양을 닮아 이름 붙인 작품이다.

 

“‘노을’은 목금기법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목금기법이란 은에 적동 등 빛깔이 다른 금속을 겹겹이 겹친 상태에서 열을 가해 서로 융점을 접합해 만든 판재를 다시 두들겨 만드는 기술인데요, 아랍에서 유래해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추측하는데,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어요. ‘내가 한번 해보자!’ 싶었죠. 이 기술의 핵심은 은과 적동을 접합하는 것인데, 이 기술을 정확히 습득하는 데 1년이 걸렸어요.”

 

이 작품은 대한민국공예품경진대회 심사 당시 ‘판재는 일본에서 가져왔을 것’이라는 오해를 샀을 만큼 저변이 약하던 한국 목금기법의 지평을 넓혔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크기가 드문 목금기법 작품이다. 아들이 목금기법을 배우고 있는데, 답답해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결국 기쁜 마음입니다. 아들이 물려받아 준다면 1호 전수자가 되겠네요.(웃음)” 부단히 도전해 새로운 경지를 일궈온 그의 열정이 그야말로 붉은 노을을 닮았다.

 

수만 번 닦달질과 울림으로 빚은 은

그의 작품은 수천, 수만 번의 망치질로 완성된다.

 

이 작업을 은대공계에서는 ‘닦달질’이라고 한다. ‘닦달하다’는 말의 어원일 정도이니 그 얼마나 고되고 골 울리는 작업일까. “제가 얼굴은 동안인데(웃음), 망치질을 하도 오래 하다 보니 한쪽 귀에 난청이 왔어요. 눈, 손, 귀를 다 써야 하는 작업이라 귀마개를 할 수도 없지요. 쇠, 은, 망치소리가 딱 떨어져야 해요. 눈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민감한 작업입니다.”

 

그의 망치 끝을 따라 반짝임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닦달질한 자국마다 빛을 내며 그제야 귀해지는 은. 저절로 반짝이는 줄 알았던 보석에 빛을 쬐는 것도, 차갑고 딱딱하던 덩어리를 알껍데기처럼 얇게 펴는 것도 오로지 장인의 망치질 하나다. 그 보람 하나로 닦달해 온 장인의 세월이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