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6년의 일입니다. 고려 태조는 후백제의 잔족을 멸망시키고 전주에 안남도호부를 설치합니다. 이름처럼 불안정한 남쪽 지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후 안남도호부는 고부와 낭주(지금의 영암), 전주를 거쳐 마지막으로 수주(지금의 부천)에 설치됩니다.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으로 혼란해진 수도 개경의 방위를 강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평과 인천에서 비롯된 이름 ‘부천’
마한 때는 ‘우휴모타국(추정)’, 고구려 때는 주부토란 이름으로 불렸고,신라 때는 장제군, 고려 때는 수주를 비롯한 안남·계양·길주·부평 등으로불렸습니다. 이후 1914년에 부평의 ‘부’와 인천의 ‘천’을 따 부천이 생겼습니다. 신설된 부천군은 부평군을 중심으로 강화군의 일부 섬과 개항장을 제외한 인천부 대부분의 지역, 남양군 대부면과 영흥면의 섬들까지를 포함하는 큰 규모였다고 합니다.
남과 북의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
1413년 태조 이성계는 건국된 조선을 8도로 나누고, 그 밑에 부·목·도호부·군·현 등을 두어 지방관을 파견했습니다. 당시 부천은 인천을 속읍으로 둔 부평도호부로, 서울에서 강화와 인천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많은 사람과 문물이 왕래하는 사회·경제적 거점이기도 해 한강을 기준으로 남과 북의 문화가 자연스레 교차하기도 했습니다.
복사꽃 피고 복숭아 익는 ‘복사골’
부천은 복사꽃이 많이 피는 고을이라 하여 ‘복사골’이라고도 불립니다. 일설에 의하면 부천 성주산 일대에는 예부터 야생 복숭아가 많이 자랐다고 합니다. 1900년대 초에 일본인들이 개량된 복숭아나무를 춘덕산 일대에 대거 심어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복숭아 산지로 전국적인 명성을 누렸다고 합니다. 지금은 서운함을 면할 정도의 복숭아밭만 남아 봄마다 일대를 환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축제의 도시, 부천
[춘덕산 복숭아꽃축제]
[도당산 벚꽃축제]
[원미산 진달래축제]
[부천국제만화축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