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성 살아 있는 우리 공예의 완성
나용환 작가
부귀영화의 염원을 담은 모란문이 옛 옹기의 선을 닮은 찻주전자에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제51회 경기도 공예품 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나용환 작가의 도자 작품 ‘분청모란박지문차도구세트’는 잊혔던 전통의 아름다움과 함께 오랫동안 꿈꿔온 작가의 꿈이 도자 속 모란으로 피어나고 있다.
글. 엄용선 사진. 정송화
옹기 선 지닌 찻주전자와 모란 문양
예로부터 김치와 젓갈, 장류 등의 식품을 저장하는 용도로 익숙한 옹기, 십구팔옹(十口八甕, 10명의 식구가 한겨울을 나려면 8개의 옹기가 필요하다)의 명문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에서 옹기는 그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민중 생존을 위한 필수품으로 존재했다. 그 ‘넉넉함’을 그대로 담은 나용환 작가의 도자 작품, 옛 옹기의 선을 닮은 찻주전자는 형태의 단순함과 재료의 질박함이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대변한다. “우리의 생활 문화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옹기를 어떻게 하면 오늘날에도 활용도 높은 그릇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이 컸어요.” 제51회 경기도 공예품 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분청모란박지문차도구세트’ 역시 그런 사유의 결과물이다. 옹기의 소재(흙)와 형태 요소(선)를 반영하는 동시에 투박하고 무겁다는 단점을 보완한 베이스, 여기에 고귀한 삶과 부귀영화의 염원을 담은 전통 문양인 모란을 상감 박지기법으로 장식하고 잔 안에는 수금을 발라 영롱함을 더했다. 한국의 전통미를 실용적이며 격조 높은 다도구로 제작한 작품으로, 특히 신경 쓰고 고민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다운 정체성’이다. “전통 문양인 모란문을 시문해 초벌, 재벌한 후 화금까지 총 세 차례 소성했습니다. 여기에 한국적 미감, 특히 옹기의 선이나 넉넉한 맛을 최대한 끌어내 작품에 담고자 했죠.”
제51회 경기도 공예품 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나용환 작가
▼ 제51회 경기도 공예품 대전 대상작 나용환 작가의 ‘분청모란박지문차도구세트’. 나용환 작가의 작품에는 옹기의 선과 넉넉한 맛을 끌어낸 한국적인 미감이 담겨있다.
꿈을 담은 30년 도자 외길
전라남도 장성이 고향인 나용환 작가는 어린 시절 동네 곳곳에 알알이 박혀 있는 옛 도자 파편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인근이 청자의 요지로 유명한 지역인 고창인 점도 도자 문화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환경에 한몫했다. “주변에서 심심찮게 유물이 발견되었어요. 청자와 백자 파편도 흔히 볼 수 있었죠.” 자연히 관심을 두게 되었고 궁금증이 생겼으며 다양한 색감과 여러 형태미를 접하며 묘한 매력을 느꼈다. 이를 통해 자연스레 도자공예가로 성장해 왔다는 나용환 작가. 그의 작품에는 지난 30년 도자 인생과 그의 꿈이 담겨 있다. 그의 작품에서 긴 세월 연마해 온 뛰어난 도자 기술뿐 아니라 30년 도자 공예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어찌 보면 시절을 잘 만난 것 같기도 합니다. 과거 선대 도공들은 정치적·경제적 어려움, 전쟁 등 고난과 역경 속에서 작업을 이어갔을 텐데 말이죠.” 목표와 꿈을 가지고 발전해 가는 삶은 고귀하다. 그 정신 또한 단단한 흙에 담겨 도자 속 모란으로 화려하게 꽃 피운다.
우리다운 공예 완성에 관심
그의 관심은 전통을 계승하며 현대성이 살아 있는 우리다운 공예를 완성하는데 있다. “옹기의 선(형태)과 재질(재료), 모란 같은 전통 문양을 차용하는 것을 넘어 디자인 면에서 품위 있고 당당한 한국적 미감이 돋보이는 다구를 지향하고자 합니다.” 주변 여건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지금, 특히 고민스러운 점은 ‘우리다운 정체성’이라는 나용환 작가. 젊고 역량 있는 작가가 많이 배출되어 우리 공예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오늘날, 앞선 길을 걸어온 선배 작가로서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 등에 비해 우리나라 도예 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부분이 있습니다. 젊은 도예가들이 생계 곤란으로 그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제도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책이 마련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