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시에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
수리산이 포근히 감싸 분지를 이루는 군포시는 수리산과 얽힌 옛이야기가 다수 내려오고 있다.
군포시와 관련한 전설과 지역명의 유래 등을 소개한다.
글. 남혜경 사진. 군포시 참고. 경기도메모리
“오해한 왕자가 바위를 주먹으로 힘껏 내리치자 바위가 무너지며 왕자와 거북이를 덮쳤다.”
수리산 노랑바위 ⓒ군포시
왕자를 구한 거북이와 수리산 노랑바위 전설
노랑바위는 수리산 산신제당 위쪽인 관모 봉 중턱에 있는 바위로 이곳에는 왕자와 관 련한 안타까운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옛적 에 한 임금이 있었는데 불혹이 넘도록 왕통 을 이을 왕자가 없어 근심하고 있었다. 임금 이 지극 정성으로 기원하자 하늘이 감복했 는지 기골이 장대한 왕자가 태어났다.
왕자가 세 살이 되던 해에 전란이 일어나 강 화도로 피란을 가는 길에 나룻배를 탔는데 마침 심한 폭풍우를 만나게 됐다.
배가 난파 하려는 순간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나 왕자 를 태우고 육지로 나와 은신처를 찾았다. 거 북이와 왕자가 수리산 관모봉 중턱에 이르 렀다.
거북이의 등에 업혀 며칠을 굶다 보니 왕자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왕자에게 드릴 음식을 구하기 위해 거북이 는 마을로 내려갔다.
거북이의 뜻을 모르는 왕자는 거북이가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것 으로 오해하고 분한 마음에 사로잡혀 바위 를 힘껏 주먹으로 내리쳤다.
순간 천지를 뒤 흔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위가 무너지 며 왕자를 덮쳤다.
왕자는 노란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었고, 마 을로 내려간 거북이 역시 우박처럼 쏟아지 는 바위를 맞아 죽고 말았다.
그 후 왕자의 피가 흐른 바위를 ‘노랑바위’라 불렀고, 광정 마을에 안양군의 신도비가 세워진 바위를 ‘거북바위’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관련 지역 : 노랑바위, 거북바위
동생이 돌아온 마을 도랫말 전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에 군포시 당동 도랫말에는 김씨 성을 가진 두 형제가 살고 있었다.
형은 부유했고, 동생은 가난했다. 그 런데 동생에게는 아들이 있었으나 형은 아 이가 하나도 없었다.
마음씨 착한 동생 부부 는 자녀를 간절히 원하는 형님댁이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밤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백 일 동안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어느 날 밤 동생은 형님 집 우물에서 큰 용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하늘로 솟구쳐 자기 집의 우 물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꿈 내용이 심상치 않아 아내에게 말하자 아내 역시 같 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동생은 그 후 형님이 아이를 갖도록 계속 기 도했으나 오히려 동생댁이 다시 아이를 갖 게 됐다.
하지만 형님댁은 여전히 자녀 소식 이 없었다. 동생은 큰아이를 형에게 입양시 키고 자신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기로 제안했지만 형님은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동 생은 이미 굳게 마음먹고 있었다. 큰아이와 이별하는 것은 마음 아팠지만 형님께 큰아 이를 맡기고 아내와 함께 정처 없이 길을 떠 났다. 형님을 떠난 동생은 한곳에 정착했다.
동생은 가난했지만 다복했고, 자녀들도 장 성했다. 갑자기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한 동생은 홀로 된 형수가 걱정돼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이런 연유로 마을의 이름을 ‘돌아 온 마을’이라는 뜻의 ‘도랫말’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 마을의 우물은 쌍룡이 노는 물이라 고 알려졌으며, 이 우물물을 마시면 쌍둥이 를 낳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우물물 이 영험한지 이곳에선 해마다 쌍둥이가 태 어난다고 한다.
관련 지역 : 도랫말
“이 마을의 우물은 쌍룡이 노는 물이라고 알려졌으며, 물을 마시면 쌍둥이를 낳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도랫말 전설 ⓒ군포시
“빼어난 산봉우리가 마치 독수리 같아 수리산이라 불린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수리산? 태을산? 견불산?
수리산의 다양한 이름과 유래
군포시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수리산 은 군포 시민에게 마음의 안식처로 사랑받 고 있는 산이다.
수리산은 ‘태을산’, ‘견불산’ 으로도 불린다. <세종실록지리지>(1454), <동국여지승람 >(1481), <대동지지>(1864) 등 옛 서적에 수리산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온다.
수리산의 빼어난 산봉우리가 마치 독 수리 같아 수리산이라고 한다는 설이 있고, 또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한, 현재 속달동에 위치한 수리사(이치를 닦는 절이라는 뜻)의 이름을 본떠 수리산이라고 칭했다는 설도 있다.
또 조선 시대에 왕손이 수도를 했다고 해 수리산이라 부른다는 설도 전해진다. 한편 태을산은 명칭만 문헌에 전할 뿐 내력 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태을’ 이란 만유를 포함하는 큰 도리, 혹은 천지창 조의 혼돈의 원기를 말하기도 한다.
도가에서 ‘태을성신’을 일컫기도 하는데 ‘태을성’은 병이나 재앙, 인간의 생사를 다스리는 별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풍수지리에서는 큰 독수리가 두 날개를 펼치고 날아내리는 모습을 매우 귀한 땅의 형상으로 꼽았는데, 이런 형상을 천을봉 또는 태을봉이라고 부른다.
이런 연 유로 태을봉이라는 이름은 도가적인 태을 성이나 풍수지리적인 태을봉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수리산 가장 높은 봉우리에 이 명칭이 붙어 ‘태을봉’(489m)으 로 불린다.
수리산의 또 다른 이름인 견불산은 불가에 서 비롯되었다. ‘견불’은 불가의 ‘견성성불 (見性成佛)’의 줄인 말로 ‘자기가 불성을 깨 달아 마음을 바로 봄으로서 깨달은 자가 되 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한 이야기로, 옛날 수리산 수암봉 아래 지장골에 연암사라는 절이 있었다.
이 절의 스님이 일심으로 수도하던 중 지장보살을 친견해 절 이름을 지장사로 바꾸었고, 마을 이름도 지장골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수리 산을 견불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이런 연 유가 있다.
관련 지역 : 수리산, 태을봉
호랑이와 도깨비불이 출몰했던
군포시 범밧골 전설
수리산 줄기의 갈치저수지 인근 깊숙한 곳 에 범밧골이 위치해 있다.
범밧골에는 커다 란 돌로 된 굴인 범밧굴이 있는데 사람 한 명이 기어 들어갈 만한 넓이다.
동굴 안에는 또 하나의 작은 굴이 있는데 작은 굴을 자꾸 기어 들어가다 보면 인천의 월미도가 나온 다는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포수 가 사냥감을 몰면 짐승들이 이 굴속으로 들 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굴 입구에 불 을 지펴 짐승이 나오도록 유인한 탓에 지금 도 굴 입구에는 시커멓게 그을린 자국이 남 아 있다.
범밧굴의 윗동네 범밧골에는 범이 자주 출 몰했다. 이곳에는 나무가 우거지고 밤이면 사람도 지나다니지 않았는데, 바깥에 있는 화장실에 갈 때 마을 사람들은 범이 나올까 무서워 여럿이 짝을 지어 같이 다녔다.
밤이 면 범이 내려와 기르는 개를 물어 가곤 했 다.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연못에서 낚시질을 하면 범이 내려와 물고기를 물고 갔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사람은 잡아가지 말라며 개를 한 마리씩 내어주었다고 한다.
범밧골에선 이따금 도깨비불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도깨비불이 어느 집으로 들어가면 그 집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저녁에 집 밖에 나갔다가 거구의 사람이 불 러 갔는데 밤새도록 그 사람에게 끌려다녔 고, 새벽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람이 아닌 부지깽이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도깨 비불은 종종 가랑골에서 나와 범밧골로 가 곤 했다고 한다.
“거구의 사람에 불려 밤새 끌려 다녔는데 새벽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지깽이였다.”
관련 지역 : 범밧골, 범밧굴
일본어 지명이란 오해 ‘산본’은 ‘산 아래’란 의미
군포시 산본동의 산본(山本)이라는 이름은 공교롭게도 일본의 성씨인 야마모토(山本)와 같아서 일제강점 기 때 지어진 이름이 아니냐는 오해 가 있다.
그러나 산본(山本)은 우리 말의 ‘산밑, 산아래’를 한자로 나타 내기 위해 붙여진 것으로 경남 김해 시 진례면 산본리, 강원도 춘천시 신 북읍 산천리 산본마을 등 산밑 마을 을 나타내는 여러 예를 볼 때 일본어와는 관계없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산본의 명칭은 조선시대에 ‘산저리 (山底里)’ 였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무단통치하기 전인 1871년 조선의 문헌 기록에 ‘산본리(山本里)’로 나타나고 있다.
관련 지역 : 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