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역사 산책

경기옛길 의주길 제1~5

산 따라 물 따라

대륙으로 세계로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길

5월에는 의주길을 따라 초여름에도 선선한 경기도 최북단으로 향한다. 의주길은 한양에서 개성, 평양, 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이어지던 의주대로를 되살린 길이다. 예로부터 한반도와 대륙 사이 사람과 물자와 문화가 흐르던 이 길에, 지금은 남북 공동 평화와 번영이라는 새로운 꿈이 지나고 있다.

구지회 출처 경기문화재단


1길 벽제관길

애향하고 애국하는 마음이 서린 길

고양 벽제관지·덕명교비·김지남묘

소요 시간 2시간 30분

 

고양 벽제관지 ⓒ국가문화유산포털

 

제1길의 첫머리인 벽제관지는 청나라와 조선을 오가던 양국 사신들이 쉬어 가던 벽제관 터다. 여기서 남쪽으로 벽제천 물길을 따라가면 공릉천이 나오는데, 1658년 고양 군민이 힘을 모아 이곳에 다리를 만든 후 세운 덕명교비가 남아 있다.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52호로, 다리 건설에 함께한 760여 명의 이름을 한문과 이두로 기록하였기에 옛 문자 연구 자료로도 그 가치가 높다. 벽제관길 끝자락에는 조선 후기 역관으로 활약한 김지남의 묘가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 활약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인물로, 조선과 청나라의 영토를 정해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는 데 이바지했는가 하면 목숨을 걸고 중국의 최신 화약 제조법을 들여온 바 있다.

벽제관지: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덕명교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김지남묘: 고양시 덕양구 오금1로 10

고양 벽제관지 ⓒ국가문화유산포털

 


2길 고양관청길

백성을 돌보는 정치, 백성을 해하는 정치

고양 연산군시대 금표비

소요 시간 3시간

 

고양 연산군시대 금표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벽제관지에서 다시 북쪽으로 길을 잡고 출발하면 고양관청길이다. 과거 이 주변에는 관청이 몰려 있었기에 지금도 고읍, 관청령, 향교골 등 관련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폭군의 흔적도 남아 있다. 바로 연산군이 자신의 사냥터에 백성들이 출입하는 것을 막고자 세운 ‘연산군시대 금표비’다. 연산군은 이 표석을 넘어온 이들을 가차 없이 참형하곤 하였다. 이에 원한이 깊었던 백성들이 연산군이 폐위되자마자 금표비를 땅속 깊이 파묻어 버렸다. 1995년 묻혀 있던 금표비를 우연히 발견해 다시 땅 위로 올렸는데, 수백 년 동안 땅속에 있었던 만큼 유난히 누렇다. 그 빛깔에서 폭정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의 고통이 느껴진다.

연산군시대 금표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10-1

 

 


3길 쌍미륵길

고려의 이야기가 흐르는 길

파주 마애이불입상·윤관장군묘

소요 시간 5시간 10분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파주 윤관장군묘 ⓒ국가문화유산포털

파주향교 대성전 ⓒ국가문화유산포털

쌍미륵길 이름의 유래인 보물 제93호 마애이불입상에는 고려 왕자의 탄생 설화가 서려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고려 선종이 후사가 없어 맞이한 원신궁주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 바위틈에 사는 사람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걸 달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 선종이 알아보니 장지산 아래에 거대한 바위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고, 여기에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불공을 드리자 바로 그해 왕자가 탄생했다고 한다. 마애이불입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여진족을 물리치고 동북 9성(城)을 쌓은 고려 시대 명장 윤관 장군이 잠들어 있다.

 

마애이불입상: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산8

윤관장군묘: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930

 

 

 


4길 파주고을길

봉황이 노닐던 숲길 따라 옛 파주를 느끼는 길

봉서산·파주향교·성혼선생묘

소요 시간 3시간 30분

파주향교 대성전 ⓒ국가문화유산포털

파주고을길은 봉황새가 노래하던 곳이라는 봉서산(鳳棲山) 자락을 따라 걷는 길이다. 등산로 한쪽에는 조선 시대 공립 교육 시설이던 파주향교가 있는데, 시설 중 유교의 성현인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던 대성전이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3호로 지정돼 있다. 최초 건립 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명확하지 않다. 파주향교는 파주의 유교 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율곡 이이, 그리고 그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우계 성혼 모두 파주 출신으로, 파주고을길 끝자락에 성혼선생묘가 자리해 있다.

 

파주향교 대성전: 파주시 파주읍 향교말길 56-83

성혼선생묘: 파주시 파주읍 양리 147

 

 


5길 임진나루길

임진강 맑은 물은 흐르고 흘러

화석정·자유의 다리

소요 시간 4시간

 

파주 화석정

 

임진강을 건너는 임진나루는 개성으로 넘어가는 주요 길목이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을 건네주던 뱃사공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다른 곳의 뱃사공이 임진나루의 뱃사공을 시험하기 위해 양반으로 변장하고 하대하였다. 그러나 임진나루 뱃사공은 “수염이 한쪽으로 구부러지고 고개가 돌아가 있는 것을 보니 너도 노를 젓는 놈이로구나!” 하며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뒤만 보며 노를 젓던 뱃사공의 고충이 느껴지는 임진나루에서 고개를 들면 화석정이 보인다.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의 5대조 할아버지가 세운 정자로, 이이가 8세 때 이곳에서 느낀 시흥을 노래했다는 팔세부시(八世賦詩)가 유명하다. 임진나루길 끝자락에는 자유의 다리가 있다. 원래 이름은 독개다리였으나, 1953년 한국휴전협정 후 국군과 유엔군 포로 1만2,773명이 돌아온 다리라고 해 ‘자유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화석정: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자유의 다리: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어르신을 위한 큰 글씨]

연산군시대 금표비

연산군이 자신의 사냥터에 백성들이 드나드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세웠다. 색이 유난히 누런 것은 연산군을 원망하던 백성들이 금표비를 파묻어 수백 년 동안 땅속에 있었던 탓이다.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고려 선종이 맞이한 원신궁주의 꿈에 장지산에 사는 두 도승이 나타났다. 선종이 장지산 바위에 두 도승을 새기고 불공을 드리자 왕자가 탄생했다.

화석정

조선 시대 대학자 율곡 이이가 8세 때 이곳을 노래하며 지었다는 ‘팔세부시(八世賦詩)’가 유명하다.

임진강

다른 곳의 뱃사공이 임진나루의 뱃사공을 시험하기 위해 양반으로 변장하고 하대했다. 그러나 임진나루 뱃사공은 “수염이 한쪽으로 구부러지고 고개가 돌아가 있는 것을 보니 너도 노를 젓는 놈이로구나!” 하며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