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문화 지킴이

세월의 지혜와 노력으로 벼루를 만드는 인물
신근식 벼루장(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6호)

경기도 이천에 자리한 전통벼루연구소의 마당에 들어서자 한쪽에 쌓인 붉은 돌들이 눈에 띄었다. 모두 벼루를 만들기 위해 준비해 놓은 재료였다. 누군가에게는 제멋대로 깨진 돌에 불과하겠지만, 벼루장 보유자 신근식 선생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이 좋은 원석이다. 3대째 대를 이어 벼루를 제작하는 신근식 선생은 “최고의 벼루는 좋은 돌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한다.

지혜의 유산, 원석

대를 이어 벼루를 제작하는 신근식 선생은 17세에 일을 시작했다. 가장 처음 배운 일은 원석을 캐는 것이었다. 기계가 없던 시절, 맨몸으로 깊은 광산에 들어가 무거운 돌을 들고 나르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원석을 캐는 일부터 배웠어요. 원석을 채취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광산 겉에 있는 돌들은 이물질이 많아서 벼루 재료로 쓰기 안 좋아요. 적어도 40~50m 아래에 있는 원석을 쓰지요. 지게 지고 내려가서 무거운 돌을 캐다가 나르는 거예요. 말도 못 하게 힘들어요.”
신근식 선생은 단양의 광산에서 얻는 자석을 사용한다. 처음 단양의 자석을 발견한 사람은 그의 조부인 신철휴 선생이었다고 한다. 단양의 자석은 일반적인 벼루 원석보다 경도가 2~3도 더 강해 입체적인 조각을 할 수 있고, 물을 먹어도 벼루가 갈라지지 않는다.
“벼루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돌과의 만남이에요. 어렵게 원석을 채취해서 공장에 가져와서 보면 이물질이 끼어 있는게 또 있어요. 그러면 가차 없이 버려야 하지요. 이물질이 끼어 있
으면 먹이 곱게 갈리지 않습니다. 원석을 잘 골라야 비로소 좋은 벼루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시간의 힘, 기술

신근식 선생이 원석을 캐고, 돌을 가는 일부터 시작해 조각하게 되는 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조각을 하다가 돌을 깨뜨려서 많이 혼나기도 했다고. 그는 좋은 벼루를 만들려면 오랜 시간을 쌓
아야 한다고 말한다.
“재능이 있고, 기술이 제아무리 좋다고 해도, 좋은 벼루를 만들려면 10년 이상은 걸려요. 돌을 다루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기술자라고 하면 10년은 꾸준히 해야지요. 돌아가는 건 없어요. 오래 실력을 쌓아야 해요. 제가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김선종 씨는 40여 년째 기술을 배우고 있어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많은 제품이 쉽고 빠르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신근식 선생은 여전히 전통의 방식으로 고수하고 있다. 기계의 힘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손수 벼루를 만들어 낸다.
“기계가 있어도 기술자 손을 거치지 않으면 작품이 나올 수 없어요. 우리는 원석 모양을 보면 어떤 작품을 만들지 먼저 머리에 그림을 그립니다. 그거를 세밀하게 구현하려면 일일이 손으로 작업
을 해야 해요. 먹을 대고 가는 벼루 표면도 직접 갈고 다듬어서 마무리하지요. 그래야 좋은 벼루가 나와요. 지금도 40㎝ 이상의 대형 벼루를 만들려면 2~3개월은 족히 걸려요.”

장인의 고민, 미래

신근식 선생의 기술은 제자인 김선종 씨가 물려받고 있다. 그는 전수자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김선종 씨의 뒤를 이을 만한 사람을 아직 찾지 못한 탓이다.
“벼루 만드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에요. 돌가루를 많이 마셔서 벼루 만드는 사람들은 병을 하나씩 안고 살지요. 또 돌을 깎아내다가 손을 다치는 일도 허다하고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힘
든 이 일을 배우려 하지 않아요. 이제는 누가 벼루 배우러 온다고 하면 모셔야지요. 제가 힘이 닿는 데까지 벼루를 만들겠지만, 언제 기술이 끊길지 몰라요.”
신근식 선생은 마지막으로 전통과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줄 것을 당부했다.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사라진다며.
“오랜 세월 내려온 지혜와 노력이 쌓여 만든 벼루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이 필요해요.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우도 더 좋아져야 하고요. 이제는 사회가 나서서 전
통을 지켜야 해요.”

원석을 깎아 벼루를 만드는 기술을 제자 김선종 씨에게 전수 중인 신근식 벼루장